“확장현실(XR) 기기가 대중화되는 날이 언젠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팔로어’(따라가는자)가 될 뿐이고 앞서가는 ‘퍼스트 무버’(1등 주자)가 되려고 뛰어들었습니다.”
최근 서울 용산구 CJ CGV 본사에서 만난 손종수 디지털혁신담당은 XR 사업의 시장성에 대해 묻자 이같이 전망했다. CJ CGV는 내년 초 애플의 XR 기반 공간컴퓨팅 기기 비전프로의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인 ‘스크린X’ 출시를 앞두고 있다. 국내 대기업 중 비전프로 전용 앱을 내놓는 곳은 CJ CGV가 처음이다. 스크린X는 270도 파노라마 형태로 스크린이 펼쳐져 마치 영화관에 온 것처럼 영상 콘텐츠를 보여주는 앱이다. 손 담당은 “영화뿐만 아니라 K팝 등 스크린X에 최적화한 형태로 다양한 전용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XR ‘1등’ 깃발을 꽂기 위한 정보기술(IT) 업계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애플,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은 자사 기기의 앱 생태계 확장을 위한 ‘킬러 앱’ 유치에 사활을 걸고 게임, 영상 등 콘텐츠 기업들도 XR 맞춤형 앱 개발에 잇달아 뛰어들고 있다. 애플이 선두주자 메타를 바짝 추격하고 삼성-구글-퀄컴으로 구성된 XR 동맹도 내년 참전을 본격 예고하며 싸움이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16일 IT 업계에 따르면 현재 메타 XR 기기 퀘스트의 전용 앱은 3500개, 비전프로 전용 앱은 2500개로 추산된다. 퀘스트의 전신인 메타 오큘러스가 2016년 처음 출시됐고 애플 비전프로는 올 2월 판매를 시작한 점을 고려하면 애플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생태계를 넓히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애플이 올해 초 비전프로를 출시할 때만 해도 전용 앱은 600개였는데 약 10개월 사이 4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XR 승부는 결국 이용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편의와 즐길거리를 줄 수 있느냐로 갈릴 것”이라며 “앞으로 각 기업들은 기기에서 구현하는 ‘킬러 앱’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했다.
애플이 올해 야심차게 비전프로를 내놨는데도 고전하는 주요 원인으로도 콘텐츠의 부재가 꼽힌다.앱 수가 늘어났다 해도 기기 값이 500만 원(3499달러)에 달하는데 “막상 할 게 많지 않다”는 평가 때문이다. 반면 메타의 최신 제품 퀘스트3S는 100만 원 아래 가격에 상대적으로 게임 등 즐길거리가 많다는 호평을 받았다. 현재 XR 기기 시장 점유율은 메타가 70%대로 압도적인 1위다.
다만 XR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라 승패를 단정할 수 없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도 10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3500달러라는 가격은 대량 판매용이 아니다”라며 “궁극적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제품을 전달하고 싶다. 앞으로 더 좋아지고 현재 생태계 관점에서 볼 때 성공적”이라고 말했다.
구글이 삼성전자, 퀄컴과 손을 잡고 XR 시장에 본격 뛰어드는 것도 내년 XR 시장의 관전 포인트다. 3사는 12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구글 캠퍼스에서 개발자 행사를 열어 XR 기기 ‘프로젝트 무한(無限)’을 공개하고 내년에 출시한다고 밝혔다. 샤흐람 이자디 구글 부사장은 “안드로이드 기반이라서 구글 플레이(앱마켓) 앱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며 “내년 XR 특화 앱, 게임, 몰입형 콘텐츠 출시를 앞두고 있다”고 했다.
구글은 새 XR 플랫폼에서 눈앞에 보이는 사물이나 장소를 곧장 인공지능(AI)이 검색해 정보를 제공하는 ‘서클 투 서치’도 지원되는 등 다양한 특화 기능을 선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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