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선진국 덴마크
원격처방-약 배달 시스템 도입… 의료기록 실시간 공유 돼 가능
요양원은 집과 비슷하게 꾸미고, 간병비는 국가-지자체가 지원
2030년까지 매년 8700억 원 투입… 아동-청소년 정신질환 예방 강화
《“환자 본인과 주치의는 언제든 몸 상태와 검사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또 환자 정보가 의료진에게 공개되기 때문에 다른 병원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헬스케어덴마크 한스 헨릭 선임고문)
덴마크는 그린란드를 제외하면 국토가 한국의 절반 정도로 작은 나라다. 인구도 597만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행복지수는 세계 1, 2위를 다투고 보건 복지 수준도 높다. 한국은 정보기술(IT) 선진국이지만 여전히 병원 간 건강정보 데이터가 교류되지 않는 반면 덴마크는 개인의 건강 정보가 주치의를 포함해 여러 의료진에게 공개되지만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거의 없다. 그 배경에는 의사와 환자 간 두터운 신뢰가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처럼 개인이 병원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본인 검사 결과를 복사하지 않아도 된다.》
약 배달까지 되는 원격진료 활성
지방 의사 부족은 한국과 덴마크의 공통된 고민이다. 부족한 지방 의료 인프라를 메우기 위해 덴마크 당국은 환자당 가산금을 지원하며 원격진료도 활용하고 있다. 한국과 달리 덴마크에선 원격처방을 받은 뒤 직접 약국에 가지 않아도 약국에서 약을 배달해준다. 몸이 불편한 환자를 위해서다.
당뇨병 환자들을 위한 스마트 원격진료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수도 코펜하겐에는 스테노 당뇨병센터가 있는데 이는 위고비, 삭센다 같은 비만 치료제로 유명한 제약사 노보노디스크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시설이다. 4일(현지 시간) 찾은 이곳에선 의료진이 혈당 조절에 문제가 생긴 환자들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원격진료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환자의 혈당, 심박수, 혈압 등 의료기록이 자동으로 담당 주치의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 센터의 내분비 내과 전문의인 프레데릭 페르손 소장은 “현재 센터는 환자 1만 명을 원격으로 관리하고 있다”며 “심근경색 등 건강 이상이 발생하면 자동 경고를 발송하는 시스템도 구축 중”이라고 말했다.
양로원 간병비 국가 지원, 치과 의사도 상주
고령인구가 많은 만큼 덴마크 곳곳에도 요양원이 있지만 운영방식은 한국과 다르다.
3일(현지 시간) 찾은 코펜하겐 근교 홀메가드스파켄 널싱홈(요양원)에선 안방처럼 아늑한 1인실 내부가 눈길을 끌었다. 요양원 측은 “입소 노인 120여 명이 원래 살던 집에서 가져온 가족사진, 미술작품 등으로 방을 꾸며 가정집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이라며 “덴마크에선 대부분의 요양원이 이런 방식으로 운영된다”고 했다.
덴마크의 요양원 입소는 지방자치단체 심사를 통해 이뤄진다. 시설이 좋은 요양원의 경우 1, 2년 기다려야 하는 일도 생긴다. 대신 간병인 비용을 국가나 지자체에서 지원하기 때문에 한국처럼 간병인을 구하느라 애쓸 필요가 없다.
요양원에는 한국처럼 치매 환자들이 가장 많이 입소해 있다. 거동이 불편한 입소 노인을 위해 의료진이 매주 1차례 방문해 진료하는데 치과 의사가 상주해 노인 치아를 관리해 준다는 점이 한국과 달랐다.
또 삶의 질을 높이는 첨단 기술도 눈길을 끌었다. 각층마다 설치된 대화형 대형 터치스크린을 활용하면 다른 주민과 손쉽게 소통할 수 있다. 예정된 내부 행사와 식당 메뉴 안내는 물론 도착 예정 버스 시간 확인도 가능하다. 가상현실(VR) 기기를 통해 환자 인지기능을 높이는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요양원의 린 후빈 소장은 “VR 기술로 노인들에게 익숙한 추억의 환경들을 보여주며 인지기능 향상을 높이고 있다. 물을 어느 정도 마셨는지 체크할 수 있는 스마트 물통도 도입했다”고 말했다.
정신질환 조기 치료 캠페인도
2021년 기준으로 덴마크의 자살률은 한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그럼에도 덴마크 정부는 정신 건강 문제 완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도입해 운영 중이다.
지난달에는 포괄적 보건개혁에 신체 및 정신 건강 서비스를 통합한 ‘라이트하우스 라이프 사이언스’ 프로젝트가 출범했다. 2030년까지 매년 한화로 약 8700억 원을 정신 건강 분야에 투자하는 것이 골자다. 정신 건강은 조기 개입과 예방이 중요한 만큼 특히 아동과 청소년 및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지원을 강화할 방침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는 것만으로 사회적 낙인이 찍힌다는 건 덴마크와 한국의 공통된 고민이다. 덴마크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 오브 어스’ 등 관련 캠페인을 통해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개선하고 있다.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사회적 거리를 좁히고 공감을 촉진하는 캠페인도 진행 중이다.
‘큰 소리로 말해봐(Say it out loud)’ 캠페인의 경우 정치인, 연예인 등 유명인과 인플루언서가 자신의 감정을 공개적으로 공유하며 정신 건강 관련 대화를 일상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청소년 대상 무료 상담 서비스도 운영 중인데 매년 1만 명 이상이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덴마크 대사관 매즈 피리보그 참사관은 “아동과 청소년, 약물 및 알코올 남용 시민의 정신 건강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현대적 정신병원 건립과 정신 건강 응급실 구축도 추진 과제에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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