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취 끝판왕 레드와인, 두통 원인 찾았다

  • 동아닷컴
  • 입력 2024년 12월 17일 13시 51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유독 레드와인만 마시면 극심한 두통에 시달릴 때가 있다. 다른 술을 마시면 숙취가 거의 없는 사람도 소량의 레드와인을 마신 후 ‘골 때리는’ 고통을 겪을 수 있다. ‘레드와인 두통 증후군’이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로 레드와인으로 인한 두통은 널리 알려졌다. 로마시대 책자에도 레드와인 두통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다.

지금껏 가장 큰 의심을 받은 물질은 황화합물(특히 아황산염)과 적포도의 껍질에 풍부한 타닌 성분이다.

하지만 황화합물이 두통의 원인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레드와인과 비슷한 수준의 황화합물을 함유하고 있는 다른 음식들은 두통을 유발하지 않는다. 화이트와인 역시 레드와인과 비슷한 수준의 황화합물을 함유하고 있다. 게다가 인체는 음식물에 있는 단백질을 대사하면서 하루에 약 700밀리그램(㎎)의 황화합물을 자체적으로 생성하고, 이를 황산염으로 배출한다. 와인 한잔의 황화합물 양은 20㎎에 불과하다.

생물학적 아민(biogenic amine)을 레드와인 두통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이도 있다. 이는 많은 발효식품(간장·된장에도 들어 있다)이나 부패한 식품에서 발견되는 질소 화합물로 두통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와인에 포함된 양은 문제가 될 정도로 많지 않다.

타닌도 의심의 대상이다. 화이트와인에는 거의 없고 레드와인에만 꽤 많은 양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페놀 화합물인 타닌은 모든 식물에서 발견되며, 질병 예방, 포식자에 대한 저항성, 동물을 통한 씨앗 확산을 돕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타닌은 차나 초콜릿 같은 다른 식품에도 포함되어 있으며, 이들 식품은 일반적으로 두통을 유발하지 않는다. 페놀 화합물은 강력한 항산화제로 두통을 유발하는 염증을 일으킬 확률이 낮다.

포도껍질과 씨앗에는 타닌 외에 다양한 페놀 화합물이 들어 있다. 페놀 화합물은 양조과정에서 레드와인에만 남게 된다. 따라서 페놀 화합물 중 특정 성분이 두통의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

과학자들이 주목한 물질은 퀘르세틴(quercetin)이라는 페놀 화합물이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과학 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레드와인 속 항산화 성분인 퀘르세틴이 알코올 대사를 방해해 두통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요지의 논문을 지난해 발표한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UC 데이비스) 앤드루 워터하우스 교수와 박사 후 연구원이자 공동 저자인 아프로미타 데비 박사가 연구자들이 직접 기고하는 학술 매체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에 최근 연구 관련 글을 게재했다.

이들은 알코올 대사 과정에 힌트가 있을 수 있다고 봤다.
일부 사람들은 술을 마실 때 피부가 붉게 달아오른다. 두통도 따라온다. 두통은 알코올 분해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사 지연 때문에 생긴다.

알코올 대사는 두 단계로 이뤄진다. 먼저 에탄올이 아세트알데히드로 전환되는 게 첫 번째다. 그 다음 알데히드 탈수소효소2(ALDH2·이하 ALDH)가 아세트알데히드를 무해한 아세트산으로 변환한다. 얼굴이 붉어지는 사람은 이 두 번째 단계가 느리게 진행되며, 대개 ALDH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인의 40% 정도가 아세트알데히드 분해효소가 없거나 매우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아세트알데히드가 체내에 축적되는데, 이 물질은 약간의 독성이 있으며 숙취와도 관련이 있다.

연구진은 레드와인에만 있는 특정 물질이 ALDH를 억제해 알코올 대사의 두 번째 단계를 지연시킴으로서 아세트알데히드 수치가 상승하고 두통이 생길 수 있다고 보고 관련 물질을 찾았다. 그러다 퀘르세틴이 ALDH의 강력한 억제제라는 연구 논문을 발견했다.

퀘르세틴은 포도 껍질에 존재하는 페놀 화합물로, 레드와인에서 더 많이 발견된다. 이는 레드와인 양조 시 포도 껍질이 발효과정의 마지막 단계까지 남아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실험을 통해 퀘르세틴이 ALDH의 강력한 억제제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레드와인 속 항산화 물질인 퀘르세틴이 혈류에 들어가면 대부분 간에서 퀘르세틴 글루쿠로니드(quercetin glucuronide)라는 형태로 바뀌어 배출된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연구자들은 이 물질이 알코올의 정상적인 대사를 방해해 아세트알데히드의 혈액 축적을 유발함으로써 염증과 두통을 일으킨다고 가설을 세웠다.

퀘르세틴은 일반적으로 건강에 좋은 물질로 알려졌지만 알코올과 함께 대사가 이뤄지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퀘르세틴은 플라보노이드의 일종이다. 플라보노이드는 포도, 딸기 등 베리류, 양파, 브로콜리 등에 풍부하게 함유된 화합물이다. 항산화·항염증·항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자들은 퀘르세틴 수치가 높은 와인과 낮은 와인을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어떤 와인이 두통을 유발하는지 살펴보는 임상시험을 계획 중이다. 만약 퀘르세틴 수치가 높은 와인이 더 심한 두통을 유발한다면 이들의 연구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연구자들은 고가보다 저가의 레드와인에 퀘르세틴이 더 적게 들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포도의 퀘르세틴 함량은 일조량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직접 비교 체험을 하고 싶다면 저가의 와인과 햇빛을 충분히 받고 자란 적포도로 만든 와인 두 종류를 갖춰놓고 비교 시음을 해 보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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