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항암제 대비 기대수명 늘어
변이 비소세포암 뇌 전이도 억제
여성 폐암 환자 90%가 ‘비흡연자’
고위험군 아니어도 정기적 검진을
지난해 7월 폐암 4기 진단을 받은 직장인 이희정 씨(50)의 최초 증상은 잦은 잔기침과 두통이었다. 비흡연자에다 폐암 진단 이전 건강검진에서 별다른 이상 소견이 없었기 때문에 폐암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이 씨는 “평소 건강에 자신이 있었는데 어느 날 폐암 4기 환자라면서 뇌전이도 발생했다고 하니 정말 믿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폐암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다 보니 상당히 진행된 이후나 뇌 등에 전이될 때 진단되는 경우가 많다. 폐암이 국내 암 사망률 1위를 유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폐암을 진단받았다고 무조건 절망할 필요는 없다. 최근 암세포만 죽이는 표적 치료제가 개발되며 충분히 완치를 기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 폐암, 표적치료제로 생존율 높여
폐암은 암세포의 크기와 형태 등에 따라 비소세포폐암과 소세포폐암으로 나뉜다. 전체 폐암의 85%가량을 차지하는 비소세포폐암은 특정 유전자 변이가 빈번한 것이 특징이다. 이 씨의 폐암도 정확하게 표현하면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EGFR) 돌연변이 비소세포폐암’이다. EGFR 돌연변이는 국내에선 흔한 비소세포폐암이다. 특히 EGFR 비소세포폐암은 뇌전이를 동반하는 비율이 높아 환자 5명 중 1명이 폐암 진단 시 뇌전이가 발견된다. 치료 중 뇌전이가 발생하는 비율도 44%에 달한다.
다행히 EGFR 비소세포폐암은 표적 치료제로 치료할 경우 EGFR 돌연변이를 선택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 기존 항암제보다 치료 효과는 높고 부작용 발생 가능성은 낮은 표적 치료제로는 1세대 게피티닙부터 3세대 오시머티닙, 레이저티닙 등까지 나와 있다. 이들 표적치료제 덕분에 기존 항암제 치료 시 6개월이었던 기대수명도 크게 늘었다. 오시머티닙과 레이저티닙은 EGFR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에 사용하며 특히 오시머티닙은 임상 연구를 통해 3년 이상 생존을 확인했다. 현재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는 EGFR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제로 오시머티닙을 가장 강하게 권고한다. 이 씨 역시 오시머티닙을 복용했다.
김혜련 연세암병원 폐암센터장(종양내과 교수)은 “뇌에는 ‘뇌혈관장벽(BBB)’이란 특수한 구조가 있어 약물 침투가 어렵다. 방사선, 감마나이프, 뇌수술 등을 해도 생존 기간이 짧고 뇌 괴사, 치매 부작용 등의 위험이 있다”며 “임상연구를 통해 오시머티닙은 뇌전이를 동반한 EGFR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질병 또는 사망 위험을 52%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 여성 폐암 환자 10명 중 9명 비흡연자
흔히 폐암은 흡연 때문에 걸리는 암이라고 생각하지만 흡연 외에도 가족력, 미세먼지 등 다양한 요인으로 발생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여성 폐암 환자 10명 중 9명은 비흡연자다. 비흡연 폐암에 대한 경각심 및 폐암 조기 검진에 대한 인식 제고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반면 국가폐암검진은 30년 이상 담배를 피운 54∼74세 고위험군에 한해 시행되고 있다.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지 않는 비흡연자들은 폐암 검진의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김 센터장은 “폐암은 사망률이 높지만 초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면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며 “비흡연자도 정기적으로 저선량 흉부 컴퓨터단층촬영(CT) 등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표적 치료제를 복용하면서 두 달 만에 회사에 복귀할 수 있었다. 진단 당시 3.5cm였던 폐의 종양은 약을 복용하고 6개월 후 0.5cm로 줄었고 뇌전이도 사라졌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던 반면 부작용은 관리 가능한 수준이다. 이 씨는 “폐암 진단을 받더라도 지나치게 좌절하는 대신 한국폐암환우회와 소통하길 권한다. 신약도 많이 출시됐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얼마든 완치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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