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조은아]“한식과 어울리는 K술 알고파”… 佛 와인박람회서 주목받은 ‘막걸리-소주’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18일 23시 09분


유럽 3대 와인박람회에 한국관 첫 개관
K술, 유럽 주류시장에 도전장
英에 유럽 첫 ‘막걸리 양조장’… ‘보드카’ 본고장 러, “K소주 제조”
유럽 수출액, 3년 전의 2.2배… 한식 열풍에 덩달아 K술도 인기
“K술 용어 정립과 마케팅 시급”

11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포르트 드 베르사유 전시장에서 열린 주류 박람회 ‘와인 파리·빈엑스포 2025’에서 한국 주류 홍보관(왼쪽)을 관람객들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프랑스 주류 박람회에 한국 홍보관이 설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알코올 도수가 더 낮은 소주도 있나요?”

“막걸리는 더 발효하지 않고 마실 수 있나요?”

11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포르트 드 베르사유 전시장에서 열린 주류 박람회 ‘와인 파리·빈엑스포(Wine Paris & Vinexpo Paris) 2025’. 전시장의 대형 강당에서 한국 술에 대한 질문이 터져 나왔다. 이 자리는 박람회에서 처음 마련된 ‘한국 전통주 마스터클래스’. 참가자 약 50명은 소주, 약주, 막걸리 등을 직접 시음하며 한국 전통주 제조사 대표들의 설명을 진지하게 들었다. 직원들이 다양한 한국 술을 잔에 따르자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향을 맡았고, 조심스럽게 술을 들이켰다.》


조은아 파리 특파원
조은아 파리 특파원
마스터클래스에 참석한 프랑스인 리우 씨는 “프랑스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술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한국 전통주는 알코올 도수가 세게 느껴져 익숙하지가 않지만 막걸리는 부드러워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이날 시음 평가의 맛 부분에서 가장 높은 등급을 많이 받은 술은 막걸리였다. 향 부분에선 약주가, 식감은 막걸리와 소주가 동시에 최고 등급을 많이 받았다. 희망 가격 조사에선 약주에 40유로(약 6만 원)를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사람이 응답자 22명 중 절반 이상인 14명에 이르렀다.

● 유럽에서 ‘K술’ 양조장도 생겨


10∼12일 열린 와인 파리·빈엑스포는 독일 프로바인(Pro Wein), 이탈리아 비니탈리(Vinitaly)와 함께 유럽을 대표하는 3대 주류 박람회로 꼽힌다. 올해엔 55개국에서 주류 업체, 바이어 등 약 4만5000명이 참석했다.

11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포르트 드 베르사유 전시장에서 열린 ‘와인 파리·빈엑스포 2025’에 마련된 ‘한국 전통주 마스터클래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와인 종주국으로 꼽히는 프랑스의 간판 주류 박람회에서 올해 처음으로 한국 전통주 홍보관이 생겨 눈길을 끌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국내 전통주 제조사들이 한국 전통주의 유럽 수출 확대를 위해 유럽 주류 박람회에 도전장을 던진 것.

한국 전통주 마스터클래스와 별도로 상시 설치된 홍보관에선 프랑스의 에이스푸드, 술주컴퍼니, 독일의 소주할레, 네덜란드의 더술트레이드 등 유럽의 한국 주류 수입업체 4곳이 다양한 한국 술을 소개했다. 프랑스 내추럴 와인처럼 산뜻한 느낌을 주는 청주, 한국적인 오미자가 들어간 스파클링 와인, 장거리 운송에도 품질을 유지하는 탁주, 유기농 통밀로 빚은 소주 등이 진열됐다.

호주 출신으로 한국에서 영어 교사로 활동하다가 전통주의 매력에 빠져 더술트레이드를 설립한 줄리아 멜로 대표는 한국 술에 관심을 보이는 바이어와 관람객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자세히 털어놓았다. 전국 곳곳의 양조장을 견학하며 전통주를 널리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현재 한국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 술을 알리는 양조장 투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유럽에선 한국 술을 수입하는 데 머물지 않고 술을 현지에서 생산하는 양조장까지 생겼다. 영국 런던의 ‘고미술 막걸리’는 최근 영국에 막걸리 양조장을 세워 직접 생산한 막걸리를 판매하고 있다.

● “포도 소주, 위험한 맛”


와인의 자부심이 큰 유럽의 중심에서 한국 술이 홍보전에 나서자 현지 언론들도 관심을 보였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12일 “와인파리에서 유럽 진출을 노리는 아시아 주류들이 놀라운 진전을 보이고 있다”며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지역 술들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고 자세히 소개했다.

프랑스 소비자들은 한국 술 가운데서도 각종 과일 맛이 나는 소주에 주목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로제 와인을 떠올리게 하는 포도 소주는 알코올 맛이 거의 나지 않기 때문에 (쉽게 취할 수 있어) 위험하다”고 평했다.

실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시장에서 한국 술의 성장세는 두드러진다. aT에 따르면 한국 술은 지난해 유럽 지역에 1224만 달러(약 177억 원)어치 수출됐다. 3년 전의 2.2배로 늘어난 것이다. 이제 파리 대형마트 곳곳 주류 코너에서 한국 소주나 맥주를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유럽에서 한국 술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한식 열풍 때문이다. 최근 유럽인들도 한식을 많이 먹다 보니 한식과 잘 어울리는 한국 술도 더 찾게 된 것. 심지어 ‘보드카’의 나라 러시아에서도 한식에 곁들이는 소주가 인기를 끈다. 전시장에서 만난 러시아인 주류 바이어 드미트리 메레즈코 씨는 “러시아에서 소주의 인기가 많아지기 시작해 러시아 주류 회사들도 소주 스타일의 주류를 생산하기 시작했다”며 “한류가 인기를 끌며 한식 등 한국인의 생활 방식에 관심이 많아진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의 주류 전문점에서도 한국 술이 많이 판매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슬람권이라 술을 덜 즐기는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에서 온 바이어도 한국 술에 관심을 보였다.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주류를 수입하는 베누아 루아지에 씨는 “모로코에선 아직 한국 술을 보지 못했지만 한때 드물었던 프랑스 술 ‘시드르’(사과 발효주)가 큰 인기를 끌었다”며 “한국 술도 판매하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한국 술이 낯선 만큼 한국 술이 어떤 음식과 잘 어울리는지를 궁금해했다.

● 日사케식 마케팅 시급


한국 술이 상당한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 유럽 주류 시장 여건은 녹록지 않다. 전반적으로 술 소비가 줄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2024년 알코올 통계자료집’에 따르면 유럽 지역의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은 2016년 10.2L에서 2018년 9.5L, 2019년 9.2L 등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젊은층이 기성세대에 비해 술을 덜 즐기기 때문이다. 유럽 곳곳에선 오히려 무알코올 음료 소비가 늘고 있다.

이 같은 유럽 시장에서 한국 술이 생존하고, 성장하려면 한국 술에 대한 브랜딩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의 ‘사케’, 러시아의 ‘보드카’, 멕시코의 ‘테킬라’처럼 한국의 ‘술’도 개념을 정립하고 세계 시장에 알려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에 프랑스의 내추럴 와인을 수출하다가 역으로 한국의 전통주를 프랑스에서 수입하기 시작한 최영선 술주컴퍼니 대표는 “프랑스인들은 거의 대부분 일본의 사케를 알고 있지만 한국의 술은 잘 모른다”며 “한국 술은 종류가 많고 잘 알려지지 않았으니 단일한 용어로 쓰이는 사케처럼 개념을 정리하고 체계적으로 마케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사케는 유럽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다양한 지역에서 현지화 마케팅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어 한국 술에 좋은 벤치마킹 사례가 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우유팩 같은 사각 종이팩에 든 사케 ‘간바레 오또상’은 일본에서보다 한국 시장에서 더 인기가 높다. ‘힘내세요 아빠’란 이름의 뜻을 살려 ‘아빠를 응원하는 술’의 이미지를 드러낸 덕분이다.

품질을 개선하는 노력은 기본이다. 멜로 대표는 “한국 술은 유럽으로 수입될 때 세금이 붙어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높은 가격에 맞게 품질과 가치를 높여야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럽 3대 와인박람회#한국관#첫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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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많은 댓글

  • 2025-02-19 03:32:22

    막걸리는 마실 때는 좋은데, 먹고 나면 머리도 아플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 아픈듯 뒤끝이 있어 즐길 수는 없다.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어려울 것 같음. 사끼는 한식의 반주로 즐기는데 특히 겨울철에 맛이 좋다. 와인보다 몸이 덜 불편해해 자주 즐기는 편이다. 편견없는 솔직한 견해. 뒤끝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어렵다고 생각함. 그래도 나는 막거리를 즐긴다.

  • 2025-02-19 08:20:33

    탁배기는 쌍8년도 논에서 일하는 농부들에게는 보약이었지. 가정에서 담은 그런 농주가 진짜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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