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京〓李東官특파원」 20일 실시된 일본 중의원 총선은 숙명의 라이벌인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 자민당 총재와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郎) 신진당 당수의 20여년
간에 걸친 대결을 매듭짓는 최종 승부의 장이었다.
결론적으로 이 마지막 승부에서 하시모토는 웃고 오자와는 울었다.
양당의 얼굴인 두 사람은 선거전 초반부터 각각 「과반수 획득」을 호언했다.
하시모토는 정책통인 자신에게 걸려 있는 재계의 기대와 3년여간의 정치혼란에 대
한 유권자들의 염증을 꿰뚫어 보고 「최소한 신진당에 정권을 뺏기지 않을 것」이란
계산아래 조기총선을 단행했다.
또 총선실시에 앞서 진보적 유권자층의 반발을 의식, 오키나와 미군기지 사용문제
를 매듭 짓는 한편 사민 신당사키가케와의 연정틀 유지를 강조하는 등 만일의 사태
에 대비한 「보험」까지 들어 놓았다.
반면 오자와는 옛 공명당의 지지지반인 창가학회(회원 6백여만명)의 조직적 지원
을 기반으로 자민당에 승리했던 작년 참의원선거의 재판을 시나리오로 그렸다.
그러나 선거전 중반부터 명암이 갈리기 시작했다. 최대 쟁점의 하나였던 소비세 5
% 인상의 필요성을 근거로 국민들의 반발을 차분하게 설득한 하시모토. 과거 10% 인
상을 주장했다가 「3% 동결론」으로 돌아선데다 「18조엔 감세」 대책을 내세운 오
자와의 과감한 발상.
두 인물의 주장 사이에서 하시모토의 합리적인 설득이 세를 얻어 가는 양상이 두
드러졌기 때문이다.
여기다 오자와의 지나친 창가학회 의존성향도 일반 유권자들의 신진당 이탈현상을
거꾸로 촉진한 요인이 됐다.
총선결과로 하시모토는 총리재선출이 확실해졌다. 반면 오자와는 하타 쓰토무(羽
田孜) 전총리 세력 등 당운영에 반발해온 세력의 이탈 가능성으로 평생 처음으로 정
치적 존망의 기로에 서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