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폴리〓李進寧특파원」 생수 1ℓ들이 한 병에 2천원, 휘발유 1ℓ에 4백30원. 물이 기름보다 5배가량 귀하게 대접받고 있는 리비아의 현실이다. 한국인들의 손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대수로건설이 갖는 의미가 리비아인들에겐 남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리비아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런던에서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까지는 평소같으면 비행기로 2시간반 거리. 하지만 지금은 국제선 항공기의 통행을 금지한 유엔의 제재조치로 인근 튀니지의 지방도시 제르바에서 비행기를 내린뒤 이곳부터는 육로를 이용해야 하는 먼 거리다.
유엔제재조치는 지난 86년 영국 상공에서 발생한 미국 팬암항공기 폭탄테러사건의 리비아인 용의자 2명의 인도를 거부한데 따른 것. 지난 92년4월 발효돼 4년7개월째 「족쇄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함께 미국의 금수조치는 리비아의 국가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주고 있지만 일반국민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느낌이다.
다른 교통수단이나 국내선 항공기 운항에는 하등 영향이 없고 생필품 조달도 원활해 제재 초기처럼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상점마다 길게 줄을 서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리비아정부는 유엔 및 미국의 제제조치에 대한 반발과 보안조치로 미국 달러화의 소지와 사용, 컴퓨터 등 전자제품의 반입, 사전허락을 받지 않은 곳에서의 사진촬영 등을 금지함으로써 애꿎은 외국방문객들만 불편을 겪고 있다.
트리폴리는 예상과 달리 깨끗하고 현대적인 모습이다. 현대식 건물들이 즐비하고 도로가 잘 정돈돼 있으며 국민의 85%가 차를 소지하고 있을 정도로 차량 수도 많고 차종 또한 고급이다. 호텔은 물론 일반가정에서도 접시안테나를 이용, 「적성국가」인 미국의 CNN방송까지 시청할 수 있을 정도다.
트리폴리를 조금만 벗어나면 금방 사막이 나타난다. 면적이 남한의 17.5배에 달하는 대국이지만 경작지는 지중해 연안의 북부 일부 지역으로 국토의 1.4%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약 5백만명의 리비아인 대부분은 이곳을 중심으로 도시를 형성해 살고 있다.
녹색혁명의 일환으로 지난84년부터 시작된 대수로건설의 1단계공사 전부와 2단계공사 일부가 완공돼 트리폴리를 비롯한 일부 도시들은 이미 상당한 물혜택을 보고 있다.
그러나 벵가지 등 다른 도시들에서는 생활용수는 물론이고 농업용수로도 이 물이 활용되면서 올리브 밖에 자라지 않던 척박한 땅에 감자 호박 채소 보리 등 각종 작물 재배도 가능할 정도다.
대수로는 리비아인들의 의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죽은 땅」으로만 여기던 사막에 물길이 흐르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불가능은 없다는 자신감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일간지 알시암스(태양)의 아부바트르 알부크리 기자(46)는 『우리가 테러를 위해 무기를 만들고 있는지 후손들의 생존을 위해 밭을 일구고 있는지를 미국인들이 직접 와서 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