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日대사관 인질극]현지-일본 표정

  • 입력 1996년 12월 18일 20시 48분


○…이날 페루 MRTA소속 테러범들의 습격은 리마시의 외교가인 산 이시도르 구 북쪽구역에 위치한 일본대사관저에서 30∼40명의 외국대사 및 정부 각료를 초빙, 일왕생일 축하 리셉션이 열리고 있던 현지시간 17일 오후 7시35분경 폭발물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발생. 인질범들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채 대사관저를 습격했으며 첫 폭발음이후 대사관내에서 총격소리와 서너차례 폭발음이 뒤이어 들려왔다. 대사관을 포위한 페루경찰과 요란한 총격전이 1시간가량 계속됐는데 후앙 리오네스 내무장관과 케틴 비달 경찰총수가 인질범들과 협상에 나서면서 총격전은 중단. ○…아오키 모리히사 페루주재 일본대사는 인질로 잡힌후 일본의 NHK방송과 전화통화에서 인질은 8백명이라고 진술한 반면 인질범들은 2백50명이라고 주장하고 일본외무성에서는 4백명으로 발표하는 등 인질수가 오락가락. 또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은 하시모토 류타로(僑本龍太郎) 일본총리와 가진 전화통화에서 남아 있는 인질수가 2백여명이라고 밝히기도. 인질범들은 부녀자와 노약자를 위주로 40여명을 풀어줬는데 여기에는 일본계인 후지모리 페루대통령의 노모도 포함돼 있다고. ○…인질범들의 수효는 15∼20명으로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이들중 4명을 체포했으며 최소한 3명이 부상했다고 현지 라디오방송이 보도했으나 아오키 대사는 2차통화에서 이들이 5,6명이라고 추가진술. 인질범들은 감옥에 갇혀있는 동료들의 즉각 석방을 요구하고 있는데 인질범중 1명은 이들의 석방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인질 모두를 죽이기 시작할 것』이라고 현지 라디오방송에서 경고. ○…일본대사관 옆에 위치한 고층건물에서 사건현장을 지켜본 한 목격자는 일본대사관내 나무 뒤에 웅크리고 있는 인질범들을 볼 수 있었으며 리셉션에 참석한 외빈중 몇명은 얼굴을 땅에 붙인 채 엎드려 있었다고 전언. 사건당시 리셉션에는 李元永(이원영)한국대사와 아오키 대사 외에도 프란시스코 투델라 페루외무장관과 베네수엘라 브라질 볼리비아 쿠바대사 등이 참석하고 있었다고 대사관을 빠져나온 목격자들이 증언했으나 이들 모두가 인질이 됐는지는 즉각 확인되지 않은 상태. ○…일본 외무성은 이날 낮12시20분경 페루공관 부근에 살고 있던 일본계 페루인의 제보전화로 테러발생사실을 접한 직후 하야시 사다유키사무차관을 본부장으로 한 긴급대책본부를 설치, 현지상황에 대한 정보수집 활동에 나서는 등 급박한 분위기. 외출 도중 사건 발생소식을 보고받고 급거 관저로 돌아온 하시모토 총리는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과 전화회담을 갖고 『인질들의 신변안전 보장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 이와는 별도로 외무성측은 주일 페루대사관측에 사건해결을 위해 전폭 지원하겠다는 뜻을 전달하고 협조를 요청. ○…일본 정부가 이번 사태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사건 발생장소가 재외공관이며 인질 대부분이 일본인이라는 점 외에도 페루가 대통령이 일본계인 점을 비롯해 일본과 「특수관계」에 있는 나라이기 때문. 2,3세 등을 합쳐 일본계 페루인은 2천2백여만명의 전체인구중 약 0.3%인 7만6천명이며 각 출신현별로 향우회까지 조직돼 있을 정도. 페루 현지에 진출해 있는 일본기업은 직접투자 14개사와 합작기업 16개사를 합쳐 30개에 달하며 주재원도 3백10명에 달한다. ○…5만6천명의 교포가 있는 오키나와(沖繩)현측은 40여명의 대규모 축하사절을 파견했다가 전원이 인질로 붙잡히는 바람에 현청에 친척 친지 등의 안부전화가 쇄도. 한편 사건발생장소인 공관내 전화가 불통되는 바람에 현지와의 통신은 일본대사관원들이 갖고 있던 휴대전화가 외부와의 유일한 연락통로였는데 각 방송국들은 휴대전화를 이용해 공관내에 갇혀 있는 일본인 인질들과 전화인터뷰를 시도해 현장 상황을 전달. 또 NHK 등 각방송국들은 정규방송을 중단한 채 현장소식을 전했다. 〈東京〓李東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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