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京〓李東官특파원」 페루주재 일본대사관저를 점거,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범인들의 주된 표적이 일본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지면서 그동안 일본계 2세인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을 음양으로 적극 지원해온 일본정부의 외교가 곤경에 빠지게 됐다.
인질범들은 19일 새벽 발표한 성명에서 『일본이 페루정치에 부당하게 간섭해왔으며 「페루국민 대다수에게 곤궁과 굶주림을 가져온」 후지모리를 지원해왔다』고 비난했다. 후지모리 대통령을 흔들기 위해 그 「대부」격인 일본과의 연결고리를 끊어 놓겠다는 의도가 역력히 엿보인다.
일본과 페루의 「특수관계」는 1899년 7백90명의 첫 일본 이민단이 발을 디딘후 태평양 전쟁기간을 제외하고는 중단없이 계속됐다. 현재 일본계 페루인은 8만여명에 상사 등의 주재원은 3천5백명.
특히 90년 후지모리가 집권한 후에는 일본정부개발원조(ODA)의 중점지원국으로 급부상, 95년까지의 엔차관 제공규모는 20억달러를 넘어섰다. 직접 투자규모도 7억달러에 이르는 등 페루에 대한 일본측의 지원은 「형제간의 우애」를 방불케 한다. 일본이 결정적으로 페루 반(反)정부단체들의 반감을 사게 된 것은 지난 92년 후지모리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정지시키는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서방각국이 원조중단 조치를 취한 것과 달리 지원을 계속한 점. 이후 후지모리 대통령이 게릴라 소탕작전을 벌이는 와중에서 군부가 게릴라혐의가 있다는 이유로 대학생을 납치 살해하는 등 인권탄압을 하는 데도 일본은 침묵만을 지켰다.
현재도 페루내에는 4백여명의 무고한 시민이 투옥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완전 취업률이 20%에 불과한 데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절대빈곤층인 페루에서는 일본의 후지모리 정권에 대한 지원이 결국 지배층의 배만 불리고 후지모리의 「강권정치」를 강화시킬 뿐이라는 반발이 끊이지 않았다. 따라서 일본내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권과 민주주의란 잣대를 외면한 채 돈으로만 영향력을 사려는 일본의 「수표외교」를 재고해야 한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또 일본정부가 자국의 영토로 간주되는 대사관내에서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 초기부터 페루정부에만 해결을 의존하는 나약한 자세를 보인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