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가 아시아 태평양의 시대라는 인식은 오래전부터 확산돼 왔다. 그러나 아태지역의 공동번영이 꽃피기엔 이질성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지적이다. 이 지역내 강국들인 미국 일본 중국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나라들의 문화 생활수준 정치제도와 2차세계대전 및 냉전시대 등 과거사에서의 입장은 크게 다르다. 아직도 상호협력보다는 경쟁과 패권 의식이 이 지역에 강하게 깔려 있는 이유다. 21세기 미국의 아시아관(觀)과 중국 일본의 대응 및 역학관계를 현지 특파원 보고로 전망한다.》
=============▼ 미국의 아시아정책 ▼==============
「워싱턴〓李載昊 특파원」 21세기 미국의 대(對)아시아 전략은 「미국의 리더십 아래서의 안정 유지」로 요약된다. 안정을 유지하되 그 안정은 미국의 힘과 가치 아래서의 안정이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아시아가 다른 어떤 한 국가에 의해서 지배되는 것을 꺼려왔다. 세기가 바뀌어도 미국의 이런 기조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지난해 9월 「21세기 미국의 대외정책―리더십에의 도전」이란 보고서에서 『적대적인 어느 한 국가에 의해서 아시아가 지배되는 것을 막는 것이 다음 세기에도 미국에는 사활이 걸린 전략적 목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와 함께 △한반도의 안정 유지 △아태지역에 대한 미국의 정치 경제 군사적 접근 확보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방지 △남지나해의 영토분쟁을 비롯한 지역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미국의 아시아전략의 핵심 요소로 꼽았다.
미국은 이런 전략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정책수단을 구사할까. 헤리티지재단의 외교정책연구실장인 킴 홈스는 그 수단으로 크게 △美日(미일) 韓美(한미)동맹체제의 유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의 강화 △중국 끌어안기 등 세가지를 들었다.
미국의 입장에서 주일, 주한미군은 미국의 대 아시아 안보공약의 상징으로 다음 세기에도 유지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APEC는 아시아국가들에 미국이 시장경제의 가치를 요구할 수 있는 틀이다.
지난해 마닐라 APEC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일부의 반대를 누르고 정보 통신제품에 대한관세를 2000년까지 철폐토록 한 것은 좋은 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역시 중국 끌어안기다. 홈스는 『명실상부한 초강대국으로 부상할 중국을 기존 국제질서 속에 무리 없이 편입시킬 수 있느냐에 따라 21세기 아시아의 지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대 중국정책은 이른바 「건전한 관여정책」이 계속 그 기조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 행정부는 인권 시장개방 미사일확산금지 대만문제 등 양국간의 현안에 대해서 「관여」는 하되 개입하거나 봉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이미 분명히 했다.
미국은 지난해 11월 마닐라 美中(미중)정상회담에서 97년부터 양국 정상이 매년 워싱턴과 북경(北京)을 한차례씩 방문토록 한다는데에 합의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이같은 합의에 대해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의 기초를 만들었다』고 자평했다.
미평화연구소(USIP)의 연구원인 스캇 스나이더(동북아 담당)는 『중국에 대한 접근은 특정 사안에 얽매이기보다 포괄적이고 총체적이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정상간의 만남을 정례화한 것은 고무적인 일로 앞으로 미중관계는 보다 부드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미국의 「관여정책」이 중국의 정책, 특히 인권과 시장개방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양보만을 거듭하고 있다는 시각이 팽배해 있다는 점이다. MIT대의 루시안 파이교수(정치학)는 『클린턴 행정부는 중국에 대해 할 말을 제대로 못하는 「저자세 외교」로 시종해 왔다』고 비판하고 『지금부터라도 일관되고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가 이런 비판들을 얼마나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중국에서 인권이 유린되고 대 중국 무역적자가 눈덩이처럼 계속 불어날 경우 대화를 통한 관여정책만을 되뇌이기는 아마 어려울 것이다.
===============▼ 중국의 대응 ▼===============
「北京〓黃義鳳 특파원」 『미국의 대중(對中)정책의 바탕엔 「서화분화」(西化分化)의 음모가 깔려있다』
중국의 지식인들 중 상당수는 미국이 궁극적으로 중국을 서구적 정치체제 혹은 가치관에 편입시키는 한편 러시아처럼 여러개의 작은 나라로 쪼개려 하고 있다고 믿는 경향이 농후하다.
구소련이 붕괴한후 미국에 맞설 유일한 강대국으로 중국이 부상함에 따라 정치외교적 수단에서부터 문화적 침투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수단을 동원해 중국을 견제,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불신감은 대미(對美)정책에 반영된다.
이른바 클린턴행정부의 중국에 대한 「전면적 관여정책」에 대해서도 중국은 비판적이다. 즉 무역 핵확산방지 인권문제 대만정책 환경 마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미국이 주장하는 국제규범 혹은 경쟁규칙으로 중국을 「억제」하려는 것이 관여정책의 목표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클린턴의 이러한 관여정책이 실패작으로 끝났다는 판단이다. 미국은 중국을 표피적으로만 이해한 나머지 모든 것을 간섭하고 나선 결과 관여정책의 중심을 세울 수 없었다는 것. 崔天凱(최천개)외교부대변인은 『미국은 중국이 왜 구소련처럼 붕괴되지 않았으며 어떻게 발전을 지속하고 있는지, 그리고 발전된 중국이 어떤 길을 갈것인지를 모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의 대미정책은 따라서 미국으로 하여금 중국이 억제 혹은 고립의 대상이 아닌 가장 중요한 협력파트너임을 깨닫게 하는데서 출발한다. 북경대의 袁明(원명)교수는 『과거 中―美(중―미)사이에는 일본이나 소련같은 제삼자가 존재, 서로를 필요로 하는 전략관계가 존재해왔으나 냉전이 끝난 지금은 제삼자가 없어졌다』며 「상호 필요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중요한 과제로 대두됐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미국이 세계전략의 중심을 유럽과 중동에 두고 있으면서 이라크와 북한을 군사적 방어대상으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억제전략까지 수행하기에는 군사력이 불충분하며 △중국은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제삼세계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세계 5대 핵보유국이자 아태지역의 최강국임을 들어 중국억제정책이 미국의 국익에도 반함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의 역할을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경고다. 중국은 구체적으로 대만문제를 중―미관계의 핵심으로 삼는다. 국가주권과 영토문제에 관한 한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끊임없이 천명하고 있다.
인권문제는 클린턴도 이제 종래의 간섭방식으로는 아무 실효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무역마찰은 어느 국가간에도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근본적인 갈등요소는 아니라는 것이다.
美日(미일)신안보선언에 따른 동북아에서의 고립가능성에 대해서도 중국은 적극 대응하고 있다.
중국은 미일안보체제가 단순한 쌍무관계가 아니라 한반도 조어도(釣魚島) 대만 등 지역에 분쟁발생시 미일이 공동대응할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특히 일본이 동북아 역학관계에 커다란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대응책 마련에 부심중이다.
국경협정체결 등 러시아와의 관계강화, 베트남 인도 파키스탄 등 주변국과의 외교강화도 이런 배경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은 향후의 중―미관계가 전적으로 미국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본다. 최근 중―미관계가 다소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면서도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 등 지원정책을 고수하는 한 끊임없는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일본의 선택 ▼===============
「東京〓尹相參특파원」 아시아에서 일본은 미국과의 확고부동한 동맹체제 아래 美中日(미중일)의 트라이앵글을 구축, 국제무대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경제적 번영을 이룩한다는 것이 정책목표다.
미국이 클린턴대통령의 재선후 중국을 상대로 정상간 상호방문 등 그동안 서먹했던 관계를 개선할 움직임을 보이자 일본도 서둘러 정상회담을 제의하고 엔차관및 무상원조를 재개하겠다고 나선데서도 그 계산을 읽을 수 있다.
최근 日中(일중)관계는 △美日(미일)안보공동선언은 중국고립화 작전이라는 중국측의 반발 △조어도(釣魚島) 영유권을 둘러싼 감정적 대립 △과거사 문제와 관련된 끊임없는 마찰로 최악에 빠져 들었다. 더구나 미국의 「중국 달래기」에 기선을 제압당한 일본은 초조감마저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일본은 중국이 국내 정치 안정과 경제 발전을 통해 아시아에서 「중화제국적 질서」를 모색하려 한다는 불안감과 군사대국화에 대한 견제심리를 짙게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갈등에도 불구하고 지역내 평화를 위해 다각적인 협력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와관련, 아사히신문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미주총국장은 최근 영국국제문제연구소(IISS)가 발행하는 서바이벌지에 기고한 「아시아 태평양의 21세기 전략」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참여와 안정과 균형의 세가지 전략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우선 참여는 아시아 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구심점으로 이룩돼야 하고 안정은 미일안보동맹을 더욱 굳건히 하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균형은 미중일 3국의 삼각구도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냉전시대 안보라는 지상명제에 함몰됐던 경제문제가 구소련 붕괴 이후 미국과의 통상마찰로 나타남에 따라 앞으로 미국과 안보 및 경제 양측면의 밸런스를 어떤 식으로 유지해야 할 것인가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양국은 경제적 대립 속에서도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 무대로 끌어내려는데는 합심하고 있다.
일본은 당분간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이오(慶應)대 고쿠분 료세이(國分良成)교수는 『국교정상화 이후 양국 관계의 큰 축의 하나가 중국의 근대화 지원이었다』면서 『그동안 중국은 역사문제를 중심으로, 일본은 현실을 중심으로 문제를 인식하는 갭이 있었으며 이를 해소키위해 민간차원과 오피니언 리더들의 폭넓은 교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음 세기가 분쟁에 휘말리느냐의 여부는 중국에 달려있다는 것이 일본쪽의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