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中 『가장 원치않는 사태』 ▼
황비서 망명요청이 중국에 통보된 지난달 12일 중국외교부의 긴급대책회의에 참가한 중국의 한반도 담당관리들의 반응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로 중국이 가장 원치 않는 사태』라는 것이었다. 저녁엔 朱昌駿(주창준)북한대사가 중국외교부로 황급히 달려와 唐家璇(당가선)부부장을 만나 『남한측이 납치한 것이니 한국으로 보낼 수 없다』는 강력한 뜻을 전달했다.
우리측이 중국측과 첫 공식접촉을 시작한 것은 지난달 15일. 외교부에서 당부부장을 만난 鄭鍾旭(정종욱)대사 일행은 황비서의 한국망명이 원만히 실현되도록 중국이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남북한 양측으로부터 정반대의 요구를 접수한 중국은 고육책으로 시간벌기에 나섰다. 『우리는 황이 중국에 들어온 것을 몰랐다. 황은 중국호텔에 묵지도 않았다. 유관국(남북한)이 타당한 방식으로 해결하기 바란다』는 입장을 내세운 것. 그러나 남북한간 직접 협상을 벌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협상은 자연히 중국을 사이에 두고 남북한이 간접대화를 하는 복잡하고도 느린 양상으로 진행됐다.
▼ 하루한번꼴 韓中 北中 접촉 ▼
중국측 협상은 주로 당가선 부부장을 중심으로 王毅(왕의)아주사장(亞洲司長·국장)과 寧賦魁(영부괴)아주사부사장 田寶珍(전보진)아주사처장(과장급) 등이 맡았고 우리측은 정대사와 서울에서 지원나온 金夏中(김하중)외무장관특보 文俸柱(문봉주)대사관 정무공사, 북한측은 주대사와 宋鳳煥(송봉환)공사 崔漢春(최한춘) 등이 나섰다. 평균 하루 한번꼴로 韓中(한중) 혹은 北―中(북―중)간 접촉이 진행됐다. 협상은 외교관례에 따라 정대사가 외교부에 들어가면 반드시 부부장과 만났고 문공사는 왕아주사장 등이 협상파트너가 됐다. 김특보의 경우 문공사에 앞서 주중공사를 역임, 중국내 지인이 많은 점을 적극 활용했다. 중국외교부의 한국담당 관리들이 대개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 통역없이 진행된 경우도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협상의 초기단계에서 우리측은 국제관례에 따라 황비서가 조속히 한국으로 망명하는 데 협조해줄 것을 중국에 강력히 요구했다. 중국이 북한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이상 초강수로 나가야 나중에 타협점을 찾을 수 있으리란 계산이 깔린 것이었다.
협상에 돌파구가 마련된 것은 지난달 17일밤 『변절자는 갈테면 가라』는 북한외교부 성명이 발표되면서부터. 이에 앞서 북한측은 한국영사부 주변에 요원들을 대거 동원해 위협을 가하자 중국은 『중국영토내에서 불법적인 행동을 용납치 않겠다』고 강력히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19일 밤 鄧小平(등소평)이 사망함으로써 협상은 추도대회가 끝난 25일까지 사실상 중단상태에 빠졌다.
26일부터 재개된 협상에서 각국은 본격적으로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당초 우리측은 제삼국 경유안을 생각하고 있었고 중국 역시 북한의 체면을 다소나마 살려주면서 황비서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제삼국 경유안뿐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이 협상과정에서 드러났다. 이와 관련, 우리측 협상관계자는 『삼국 경유안을 먼저 내놓기가 어려웠다. 어느쪽이 먼저 제시했다기보다 이야기가 무르익으면서 자연히 그 문제가 해결방안으로 떠올랐다』고 털어놓았다.
이 제안에 대한 북한의 반대가 약화된 것은 지난 5일을 전후한 때였다. 이에 따라 협상은 제삼국 선정과 경유기간으로 초점이 맞춰졌다. 협상에 참여한 우리측 관계자는 『우리는 서울직행→제삼국 경유 서울행→1개월가량 체류후 서울행 등으로 입장을 조정해 나간 반면 북한은 북한송환→제삼국 영구거주→삼국 3,4개월 거주 후 한국행 등으로 후퇴했다』고 밝히고 『그러나 북측의 입장은 중국이 제시한 조정안을 바탕으로 추정한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 中대표 함축적 표현 사용 ▼
7일 錢其琛(전기침)중국외교부장이 「국제법과 국제관례에 의거, 해결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중국의 관할권을 강조하면서 협상타결이 임박했음을 강하게 암시했다. 이미 협상은 삼국 체류기간을 밀고 당기는 문제에 접근해 있었다. 이 문제는 결국한달정도체류하는것으로대체적인 의견접근을이루면서사실상타결됐다.
우리측 협상관계자는 이번 협상을 중국과 남북한의 「밑변 없는 삼각협상」구조라고 표현했다. 중국이 삼각형의 중간꼭지점을 차지하고 양쪽에 위치한 남북한의 연결선이 끊어져 있어 협상의 주도권이 중국에 흘러갔다는 분석이다. 정대사는 『중국측 협상대표들은 매우 함축적인 표현을 사용하기를 즐겨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깊은 뜻이 담긴 것임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李鵬(이붕)총리가 14일 전인대 폐막기자회견에서 황비서문제의 타결이 무르익었다고 밝히면서 『중국은 외국의 대사관이나 영사관이 외교적 비호권을 갖고 있음을 승인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도 중국의 의도를 드러내준 케이스였다. 현재 중국과 북한간에는 외교관여권 소지자의 경우 1개월간의 비자면제협정이 체결돼 있다. 따라서 황비서의 경우 중국에 들어와 한국영사부에 망명을 요청한 것은 중국이 문제삼을 사안이 되지 않으나 영사부에서 1개월 이상 머물게 된 12일 이후는 이론적으로 불법체류에 해당한다. 이총리가 이것을 문제삼은 것은 아니지만 중국이 주도면밀하게 이같은 문제까지도 염두에 두고 이른바 관할권을 행사한 것이다.
▼ 기술적 이견으로 막판 지연 ▼
원칙적인 문제가 모두 타결됐음에도 황비서의 출국이 며칠간이나 지연된 것은 출국시간과 호송루트 등을 놓고 기술적으로 한중간에 이견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영사부 출발시간도 한밤중에 떠나는 방안에서부터 오히려 대낮에 감쪽같이 빠져나오는 방안에 이르기까지 여러 방안을 놓고 막바지 숙의를 거듭한 것으로 보인다. 양국은 모든 경우의 수를 감안해 복수의 작전계획을 작성했고 실제 예행연습까지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중 마지막 출발당시의 상황을 고려해 한가지 방안을 선택, 실제로 결행했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