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역사적 반목이 계속되어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중동 평화 협정을 성사시킨 공로로 이츠하크 라빈 총리,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자치정부수반과 함께 9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외무장관시절 『평화는 결코 힘의 우위만으로 이룩할 수 없다』는 철학으로 적대적인 아랍국가들과 자국내 보수우익 강경파들의 거센 반발을 설복시켜 평화를 이끌어 냈다.
중동이 아직도 「불완전한 평화」이긴 하지만 적어도 그는 평화의 터전은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같이 서명했던 라빈총리가 국내보수파로부터 피살되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국방차관을 시작으로 페레스전총리는 국방 외무장관을 두차례, 총리직을 세차례나 맡았으며 노동당 당수도 역임했다. 특히 이들 직책을 맡았을 때마다 이스라엘 운명이 걸려있었다.
첫번째 국방장관 때 인질극으로 유명한 엔테베구출작전을 지휘했고 외무장관 때는 역사적인 중동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이 두가지는 자신의 일생에서 결단을 내리는데 가장 어려웠던 때라고 술회했다. 또 첫번째 총리역임때는 레바논에서 이스라엘군을 철군시켜(85년)양국간의 평화를 확보한 뒤 자국의 경제안정화정책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는 국방관계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 독립전쟁에 참여한 뒤 국방부에 근무하면서 국방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편했으며 그후 이스라엘 항공산업과 핵무기프로젝트를 주도했고 56년 시나이반도 공략계획을 치밀하게 수립해 2차중동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3년 폴란드에서 출생한 그는 부모를 따라 11세때 이스라엘로 이주, 농업학교를 마친 뒤 위험하고 척박한 요르단계곡에 아루모트키부츠를 만들었고 20세때 청년운동책임자로 일했다. 뉴욕대와 하버드대에서 수학한 페레스는 탁월한 논리로 남을 설득시키는 웅변가이기도 하다. 그는 평화회담을 성사시키기까지 걸어온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담은 「평화를 위한 투쟁」이란 자서전을 냈고 최근에는 자신의 인생역정을 담은 「평화의 기사(騎士)」라는 책을 탈고했다.
가족으로는 부인과 2남 1녀. 딸과 큰 아들은 대학교수이고 둘째아들은 기업가라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