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를 소개하는 정부 발간 관광안내 자료 언어란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슬로베니아어 외에 영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중 한가지 외국어를 말할 수 있다」고 쓰여 있다. 실제로 수도 류블랴나 시내에서 아무나 붙잡고 영어나 독일어로 길을 물어보면 두세명 중 한사람은 외국어로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준다.
외국인이 거의 찾지 않을 성싶은 교외의 작은 식당 종업원도 유창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음식주문 받고 서비스하는데 불편이 없을 정도의 영어를 구사한다. 젊은층뿐만 아니라 환갑이 훨씬 넘어 보이는 할머니들 중에도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시장에 좌판을 펴놓고 과일을 파는 할아버지도 돈이 얼마라는 정도는 영어나 독일어로 말할 수 있다.
슬로베니아 사람들에게 외국어는 공부를 많이 한 일부 지식계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들은 영어를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배우는데 고등학생이 되면 어려운 문학작품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거의 전 학생이 외국인과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실용적인 교육을 시키고 있다.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힘들게 입학시험을 치르는 것도 아니고 많은 돈을 써가며 별도 과외를 받는 것도 아니다. 학교의 정규 교육과정을 통해 배운 영어로 대화하고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는데 아무 불편함이 없다.
회사간부나 정부 고위관리들이 외국에 혼자 나가 일을 처리하는데 무리가 없고 수행원 통역 등 불필요한 사람이 같이 갈 필요가 없으니 경비와 인력의 절감효과도 매우 크다.
인구 2백만명도 안되는 소국의 무역규모가 1백80억달러에 이르고 91년 독립 이후 얼마 안되는 기간내에 모든 국제기구에 가입했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비상임이사국이 되겠다고 기염을 토하는 바탕에는 이들의 외국어 실력이 한몫하고 있다고 믿어진다. 우리의 서울 한복판 명동에서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어느 외국인이 아무나 붙잡고 영어로 길을 묻는다고 하자. 과연 몇번째 사람이 길을 제대로 가르쳐 줄 수 있을까.
나윤수(류블랴나 무역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