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금년 들어 국제사회로부터 가없는 동정을 받고 있다. 굶어죽은 사람의 숫자가 수천명이나 되고 아사 위기에 있는 사람도 수십만에서 수백만명에 이른다는 다양한 주장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특히 북한은 식량부족의 참상을 어린이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눈물을 자아낸다.
굶어죽은 어린이 숫자를 발표하거나 외국 방문객들에게 고아원만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국제사회는 북한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식량위기가 그토록 심한데도 문을 닫은 채 막강한 군사력을 유지하면서 3년 전에 사망한 김일성의 생일잔치를 위해 큰 돈을 쓰는 이율배반적인 북한의 행태가 그렇게 된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식량난의 원인을 체제와 제도의 문제로 보지 않고 오로지 홍수 때문이라 주장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본다. 미국 일본 중국이 보는 북한 식량위기 상황과 그들의 대응방안을 소개한다.>>
▼미국▼
미국은 지난 3일 공식적으로 북한의 식량부족량 추산치를 처음 밝히면서 약3백만t이라고 발표했다. 이 수치는 지금까지 2백20만t으로 추산되던 부족량을 훨씬 초과한 것이다. 그만큼 미국이 보고 있는 북한의 식량난은 심각하다.
팀 워스 국무부 세계문제담당 차관은 브리핑에서 북한의 연간 식량 소비량을 6백50만t으로 계산한 뒤 소비량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식량이 부족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더구나 최근 북한이 제한적으로 대미(對美) 문호를 개방, 지난달 30일 테드 스티븐슨 의원을 비롯한 상원의원단과 지난4일 유에스에이 투데이지 기자가 동행한 토니 홀 하원의원 일행이 북한을 다녀와서 목격담을 잇달아 전함에 따라 식량지원에 대한 공감대가 미국내에서 형성되고 있다.
니컬러스 번스 국무부대변인도 이번 주초 이에 대한 미국정부의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밝혀 식량지원을 예고했다. 그러나 미국의 지원은 어디까지나 회원국들에 1억1천7백60만 달러 규모의 대북(對北)식량지원을 호소한 유엔식량계획(WFP)을 통한 간접지원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지난 2월 1천만달러의 지원이 4자회담 공동설명회 직전에 발표됐고 이번에도 16일 준고위급 회담을 전후해 발표될 예정이어서 식량지원과 대북 정책이 연계됐다는 인상을 풍긴다. 그러나 국무부측은 애써 인도주의적 차원에서의 지원이라고 강조, 연계를 부인하고 있다.
물론 미국정부는 북한이 적성국 명단에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 때문에 정부간 지원을 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보다는 한번 대북 정책의 수단으로 식량지원 카드를 사용할 경우 어쩔 수 없이 막대한 양의 추가지원에도 동참해야 한다는 우려 때문에 정부지원을 꺼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때문에 미국측은 대북 지원의 중심은 한국이라고 못박으면서 북한측에 4자회담을 포함, 남북대화가 잘 풀려야 비로소 막대한 원조를 받을 수 있다고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은 이같은 기본입장에 따라 추가지원을 독자적으로 발표하기에 앞서 한국 일본 등과 분담규모에 대해 협의를 거듭하고 있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
▼중국▼
북한이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중국도 이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최근 중국외교부 북한관계부서의 한 관리는 『우리가 가장 걱정하는 게 식량 등 경제문제다. 지난해 수확도 실패했다』며 평소 함축적으로 표현하던 것과는 달리 이례적으로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한 상태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이 비록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이로 인해 체제붕괴의 위기에 몰려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중국의 한 고위관리는 『과거 중국도 1950년대 대약진운동의 실패 등으로 아사자가 속출하는 등 극심한 식량난을 겪었으나 체제의 동요는 전혀 없었다』면서 북한 역시 식량문제로 무너질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중국이 지난해 북한에 지원한 식량의 정확한 규모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7월 中―朝(중―조)우호협력조약 체결 35주년을 맞아 羅幹(나간)국무원비서장 일행이 평양을 공식방문했을 때 곡물 10만t을 제공키로 한 것을 포함, 공식무상원조는 12만t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양국간 직간접 무역거래를 통해 약 50만t 정도의 각종 곡물이 지난해 중국에서 북한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식량지원과 관련해 이전과는 달리 냉정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의 실무자급 관리들은 더 이상 대북(對北)무상원조는 곤란하다는 태도를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 외교부의 고위관리도 최근 『중국은 개발도상국으로 남을 돕는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 지난해 중국도 각종 곡물을 1천만t이나 수입한 처지』라고 강조하면서 『설사 50만t을 준다해도 북한의 식량난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중국의 농업관계자들은 북한의 식량난이 구조적인 데서 기인한다고 보고 농민들에게 토지사용권을 제공, 일정한 기준치를 초과생산한 부분에 대해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도록 한 중국식 농업개혁만이 해결책이라고 말하고 있다.〈북경〓황의봉특파원〉
▼일본▼
일본 정부는 북한의 식량사정이 어렵다는 걸 알지만 식량지원은 UN의 인도적 요청이 있을 경우나 안보 차원에서만 응한다는 입장이며 과거처럼 「소득」 없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북한에 대해 지난 95년 두차례에 거쳐 쌀 50만t과 지난해 6백만달러를 지원했지만 국내 여론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일본 국내에서는 △북한이 식량난을 호소하면서 여전히 거액의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으며 △식량난이 심각하지만 당장 체제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아래 섣불리 나서지 말라는 여론이 우세하다. 더구나 20년 전 니가타(新潟)현에서 실종된 13세 여중생이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여론은 급격히 악화했으며 정치권에서도 70년대 일련의 납치의혹사건 진상규명 없이는 지원이나 국교정상화를 위한 협상을 보류해야 한다며 냉랭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와 관련,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총리는 최근 『대북 식량지원은 납치사건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 한 신중하게 검토할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국제기관의 원조 호소에 따른 인도적 지원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따라서 일본의 원조 결정은 북한 식량난이 극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6, 7월까지 미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며 그 규모도 과거보다는 훨씬 적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동경〓윤상삼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