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시장에서는 죽을 쑤고 개도국에서만 겨우 장사가 된다』 최근 한국 수출상품의 현주소다. 세계 첨단제품과의 경쟁에서 밀려나 「이류(二流)시장」에 안주하는 꼴이다. 그 결과 선진국과의 무역역조는 날로 벌어지는 대신 개도국과의 교역에서는 흑자가 늘고 있다. 해외시장에서의 한국상품의 위상을 특파원들의 취재를 통해 짚어본다.
▼ 선진국시장서의 실패 ▼
미국 워싱턴 근교의 타이슨즈 코너에 있는 한 중고자동차 경매장. 푸른색의 92년형 현대 쏘나타가 턴테이블에 올랐다.
경매사가 5천달러를 불렀지만 아무도 응찰하지 않자 가격이 3천달러로 떨어졌다. 조금씩 올라가던 가격은 3천5백달러에서 멈췄다.
다음 경매물건은 같은 중형차인 일제 92년형 혼다 어코드. 역시 5천달러에서 시작됐으나 6천5백달러까지 올라갔다.
미국의 소비자잡지인 「소비자리포트」의 4월호에 따르면 쏘나타GLS는 26개 동급차중 소비자 선호도에서 18위를 차지했다. 1위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도요타의 캠리LE V6. 혼다 어코드는 6위를 차지했다.
『미국 소비자들은 신차구입시 팔때 받을 중고차 시세를 중시합니다. 현재 일제차와 쏘나타는 신차시장에서도 3천달러, 중고차시장에서도 3천달러 차이가 납니다. 중고차 시세차를 좁히거나 신차 가격차를 넓히지 않는 이상 쏘나타가 시장을 장악하기는 힘들지요』 경매사의 이야기다.
지난 86년 포니로 미국시장에 첫선을 보인 한국차들은 88년 26만4천대를 팔기도 했으나 95년에는 겨우 13만2천대를 판매했다. 한번 품질에 실망한 미국소비자들의 마음을 되돌리려면 앞으로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영국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런던 남서부 윔블던에 있는 대형전자제품 판매업체인 「코메트」. 전세계의 각종 전자전기제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 매장의 종업원은 『한국제품은 하루 3,4개 정도만 팔린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프랑스법인의 김영윤대표는 『일본이나 한국이 유럽판매량의 대부분을 현지생산하기 때문에 원가에서는 차이가 없다』며 『그런데도 일본제품과 경쟁하려면 값을 덜받아야하기때문에 채산성이 악화된다』고 말했다.
〈파리〓김상영·런던〓이진령·워싱턴〓홍은택특파원〉
▼ 후진국시장서의 성공 ▼
『란다이(藍帶)에서 맥주 마시고 당다이(當代)백화점에서 쇼핑하고 셴다이(現代)차를 탄다』
「다이」로 끝나는 각운에 맞춰 요즘 북경(北京)부자들의 소비세태를 풍자한 말이다. 현대자동차가 중국인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높은지를 짐작케 한다. 최근에는 주중(駐中) 러시아대사관도 80여대의 한국산 승용차를 구입했다.
북경의 사이터(賽特)백화점 전자제품코너에서는 삼성전자의 명품TV, LG전자의 전자레인지 등의 판매가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명품TV 29인치 모델의 경우 작년초 선을 보인 뒤 꾸준히 호평을 받아 최근에는 시장점유율 27%로 동급모델 중 1위를 차지했다.
중국도 철강을 생산하지만 자동차 냉장고 TV 등에 들어가는 고급 냉연제품은 한국 등에 의존하고 있다. 철강수입업체인 오금광산(五金鑛産)은 금년도 철강수입계약물량을 5천t에서 2만t으로 늘려달라며 포철측에 사정하기도 했다.
「대우 공화국」이란 별명까지 붙은 우즈베크의 경우 전자제품과 자동차는 한국제품이 아니면 발붙이기 힘들다. 수도 타슈켄트 중심가에 자리잡은 80평 규모의 대우전자 직영매장은 구경나온 시민들로 항상 북적인다.
반면 바로 옆의 일제 매장은 종업원들이 체스를 두고 있을 정도로 한산하다. 양국 제품의 성능이 비슷한 반면 가격은 국산이 10∼20% 싼 덕분이다.
홍콩의 대형 전자제품 수입회사인 애틀랜틱트레이딩의 넬슨 호 판매담당이사는 『일본이 하루가 멀다하고 새 모델과 새 기능의 상품으로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끄는 반면 한국은 늘 한발짝씩 늦다』고 지적했다.
〈북경〓황의봉·홍콩〓정동우·모스크바〓반병희특파원〉
▼ 해외바이어의 평가 ▼
한국에서 온도계를 수입하는 프랑스의 수입상 자크 에싱거는 『한국제품은 불량률이 높고 견본과 실제 배달된 물건에 차이가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잘못이 있을 경우 홍콩의 수출상은 자기부담으로 조치해주는데 비해 한국 수출상은 모르는 체하거나 양해해 달라고 말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한국 수출상들이 최소주문단위를 너무 높게 요구한다』고 불평했다.
도난방지제품 수입상인 자크 리스시아는 『선적하면서 포장을 제대로 안해 운송도중 망가지기도 하며 인도기간이 늦어 손해를 입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가전제품 바이어들은 한국 수출상이 서비스 및 고객의 요구에 대한 반응이 늦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즉 신제품을 선보여 고객의 호기심을 견인하는 힘이 약하다는 것.
이들은 또 제품의 질은 일본 제품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지만 광고와 홍보가 뒤지고 마케팅 활동이 약해 상품인지도도 낮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금호에서 타이어를수입하는 영국의 수입상은 『비(非)유럽연합(EU) 생산제품이어서 5.3%의 관세를 부담, 가격경쟁력에서 불리하고 창고를 갖추지 못해 시장상황에 즉각적인 대처가 힘들어 3개월씩 배달이 지연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국 자동차는 서비스면에서 아직 멀었다. 최근 연료펌프가 막혀 찾아온 고객을 그냥 돌려보냈다가 중앙텔레비전(CCTV) 등에서 집중성토를 당했다. 독일에서는 3년인 보증수리기간이 왜 중국에서는 1년인가』 중국의 한국 자동차 수입상의 불평이다.
북경(北京)의 전자제품 바이어는 『한국은 상품을 더 고급화해야 한다』고 잘라 말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이류제품은 시장에서 밀려나게 마련』이라고 충고했다. 그는 『한국에는 29인치 이상 대형TV와 고급오디오는 없느냐』며 중국에는 저급품만 수출하려고 하는 한국 상사들의 전략을 꼬집었다.
〈북경〓황의봉·파리〓김상영·런던〓이진령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