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르,「민주 회복」-「또다른 독재」 갈림길

  • 입력 1997년 5월 17일 07시 50분


16일(현지시간) 자이르 모부투 세세 세코 대통령의 사임소식이 발표된 순간 그의 32년간의 독재체제도 함께 무너졌다. 모부투 대통령은 이제 과거 아프리카 독재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망명길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임은 지난해 10월 투치족 반군을 주축으로 한 콩고 자이르 해방 민주세력동맹(ADFL)이 무장봉기한 지 7개월만에 이루어졌다. 자이르는 이제 30여년간 모부투 정권의 타도를 주도해온 반군 지도자 로랑 카빌라(56)의 손에 들어갔다. 그가 자이르의 새 대통령이 되든 아니면 막후에 있든 자이르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될 것은 분명하다. 카빌라가 이끄는 과도정권은 적당한 시일내에 민주적인 선거를 실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새로 선출하게 된다. 지금으로선 카빌라가 대권가도에서 단연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 부패한 독재정권에 염증을 느낀 자이르 국민은 카빌라에게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자이르 국민들 가운데는 카빌라의 집권이 모부투에 이은 또다른 독재정권의 탄생으로 이어질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대중적 지지기반을 가진 야당지도자 에티엔 치세케디 전총리는 카빌라에게 위협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르완다 출신 후투족 난민에 대한 반군의 잔학행위로 인해 카빌라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도 우호적이지는 않다. 더욱이 그는 마르크스주의 게릴라부대로 내전을 이끌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은 그가 과연 자유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민주주의를 채택할지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가 집권하더라도 종족간의 뿌리깊은 갈등해소와 국민통합, 그리고 경제를 회생시키는 일은 어려운 숙제다. 65년 카빌라와 함께 콩고혁명전쟁을 치렀던 남미의 전설적인 혁명가 체 게바라는 향락을 즐기고 약속을 안 지키는 등 카빌라의 흐트러진 사생활에 실망, 관계를 끊었다. 그러나 체 게바라도 카빌라를 「혁명가로서는 약점이 많지만 지도자로서의 잠재력은 큰 인물」로 평가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카빌라가 지도력을 바탕으로 산적한 난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지, 그의 혁명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고진하기자〉 ◇ 모부투 사임하던날 대통령궁 경호책임자등 국외 도피 ◇ ○…모부투 대통령의 사임소식이 알려진 직후 수도 킨샤사의 거리에는 일부 시민들이 몰려나와 반군 지도자인 로랑 카빌라의 이름을 연호하며 반군의 입성을 환영하기 위해 깃발 등을 제작. 그들은 외신기자들에게 『30년에 걸친 모부투 대통령의 독재가 마침내 끝이 났다』며 춤을 추는 등 기쁨을 표시. ○…모부투 대통령은 이날 물룸바 공보장관이 그의 사임을 발표하기 수시간 전인 이른 아침 평소와 달리 많은 경찰차의 호송을 받지 않고 조용히 공항에 도착, 시민들은 그가 떠나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의 사임과 망명 가능성에 대한 소식이 발표되기 직전 대통령궁 경호책임자인 느짐비 느그발레 장군이 모터보트를 타고 콩고강을 건너 급히 콩고로 도망갔다고 목격자들이 전언. 자이르 정부군의 최정예부대를 이끌고 킨샤사로 진군해 오는 반군들과 마지막까지 싸울 것으로 알려졌던 느짐비 장군은 민간인 복장을 하고 측근 10여명의 경호를 받으며 황망히 배를 타고 떠났다는 것. 이와 함께 최소 5백여명의 자이르 정부군 병사들과 그들의 가족이 반군의 보복을 두려워해 킨샤사 북부 반둔두를 떠나 콩고강을 건너 도망가고 있다고 적십자사 관계자들이 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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