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르 내전종식]모부투 사임…민주화냐 또 다른 독재냐

  • 입력 1997년 5월 17일 20시 51분


로랑 카빌라
로랑 카빌라
32년간에 걸친 모부투 세세 세코의 철권통치가 종식된 자이르에 평화가 찾아올까.

모부투가 16일 대통령 권한행사를 포기하고 수도를 떠나자 자이르 내전의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해온 서방국들은 내전이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며 일제히 환영하고 나섰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들은 반군지도자 로랑 카빌라와 자이르의 모든 정파가 참여하는 과도정권이 권력을 이양받아 적당한 시기에 선거를 실시,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방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미국은 1천만달러의 재정지원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부투가 권좌에서 떠났다고 해서 자이르에 평화가 온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자이르의 앞날이 모부투를 축출한 카빌라의 의도에 달려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카빌라는 곧 수도 킨샤사에 개선장군으로 입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카빌라는 아직까지 선거실시에 대해 확실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또 미국은 카빌라가 시장경제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하지만 그가 민주주의를 택한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카빌라는 지난 64년 남미의 전설적인 혁명가 체 게바라와 함께 마르크시스트 게릴라를 이끌고 콩고(자이르로 개명)혁명전쟁을 주도한 좌익성향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다만 평화적으로 정권이 교체되어야만 국제사회의 인정과 지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카빌라가 인식하고 있는 이상 실제 내용이야 어떻든 민주선거를 실시할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 일단 선거가 치러지면 모부투 타도의 1등공신인 카빌라가 가장 유리한 고지에 서 있는 것은 사실이다.

몇가지 변수는 있다. 부패한 독재정권에 염증을 느낀 자이르 국민들이 카빌라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으면서도 그의 집권이 또다른 독재정권의 탄생으로 이어질까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카빌라보다 온건한 이미지를 가진데다 대중적 지지를 얻고 있는 야당지도자 에티엔 치세케디 전총리가 위협적인 라이벌로 떠오르고 있다. 카빌라는 또 반군이 저지른 르완다 난민에 대한 잔학행위로 인해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는 약점이 있다.

이밖에 누가 집권하더라도 뿌리깊은 후투 투지족간의 종족갈등을 해소하고 국민통합을 이루는 일과 근본까지 파괴된 경제를 회생시키는 일이 집권 이상으로 어려운 과제로 남는다.

따라서 장기독재자 모부투의 실각에도 불구하고 자이르가 새로운 정부를 구성, 안정을 찾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진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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