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지난 23일 대규모의 식량을 북한에 지원키로 결정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대북(對北)지원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물론 EU의 대북지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EU는 지난 2월에도 1천만ECU(유럽통화단위)어치의 식량을 지원했고 유엔의 1차(95년) 2차(96년)대북지원때도 참여했다.
하지만 이번 지원이 특히 주목을 받는 것은 그 규모 때문이다. EU는 우선 4천6백30만ECU를 들여 15만5천t의 식량을 지원키로 했다. 여기에 9백50만ECU의 추가지원도 곧 있으리라는 것이다. 결국 EU의 지원액은 총 5천8백30만ECU(약 6천3백5만달러)로 국제사회의 대북지원 사상 최대규모가 된다. 여기에 미국(2천5백만달러)과 한국(1천6백만달러)의 지원액만 합해도 북한은 1억달러가 훨씬 넘는 식량을 지원받게 된다.
이같은 지원액은 현재 진행중인 유엔의 3차 대북지원 목표가 1억2천6백만달러이고 이중 세계식량계획(WFP)의 목표치가 9천5백만달러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규모다. 이것으로 북한은 전체주민이 한두 달을 버틸 식량을 확보할 수 있다.
이것이 북한을 4자회담이나 남북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데 악영향을 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최대의 고민이었던 「6월 위기」를 넘길 수 있게 됨으로써 다소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같은 측면 때문에 정부는 EU의 대규모 대북지원에 대해 겉으론 환영하면서도 속앓이를 하는 모습이다. 「한국이 아니면 북한에 대규모 식량을 줄 수 있는 나라는 없다」며 4자회담 성사 등을 낙관해왔기 때문이다. 외무부 당국자는 25일 『EU가 전적으로 인도적 차원에서 식량지원을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 지원이 한반도 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다른 당국자는 『대북정책의 지렛대로 활용해온 식량지원 카드에 다소 문제가 생긴 게 사실』이라며 『북한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의 올 식량부족량은 2백만t이상으로 국제사회의 이번 지원만으로는 완전한 해결이 어렵기 때문에 당장은 아니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북한이 한국에 손을 내밀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문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