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제 꾀에 넘어간 佛우파

  • 입력 1997년 5월 27일 20시 02분


『통치하기에 앞서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포커판에서나 써먹음직한 정치적 장난만 치고 있어서는 안된다』 프랑스 우파연합의 한 중진인사는 25일 실시된 총선1차투표에서 패배가 확정된 뒤 이렇게 꼬집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알랭 쥐페 전총리를 겨냥한 이 지적은 이번 총선을 치른 프랑스 국민들의 여론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의 70%는 이번 조기총선이 시라크 대통령의 정략적 선거라고 판단하고 있다. 유럽통합을 위한 국론통일이나 개혁정책추진 등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등을 돌렸다. 프랑스국민은 누적돼온 사회적 불만이 올 하반기 대파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고 이에 따라 예정대로 내년 3월 총선을 치를 경우 우파의 패배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정략적 판단에서 「의회해산, 조기총선」카드를 쓴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시라크 대통령 밑에서 온갖 악역을 도맡아 처리해 젊은층으로부터 『쥐페는 푸페(인형이라는 뜻)』라는 수모까지 받아온 쥐페 전총리는 더욱 딱하다. 그의 소신인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사회보장축소 및 공기업의 효율제고를 위한 각종 조치들은 프랑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필요한 정책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악의 인기도를 기록해온 것은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그의 독선적인 성격 탓이 크다. 그는 최고의 엘리트를 배출하는 국립행정학교(ENA)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으나 자신의 비전을 과신한 나머지 국민에게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으로 정책을 밀어붙여 왔다. 결국 그는 총선에서 패배하자 사표를 제출했다. 당리당략에 따른 결정, 국민을 설득하기보다는 자신의 소신을 무조건 강요한 결과가 패배로 나타나는 것은 프랑스뿐만이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 정치인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김상영<파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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