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주가로 숱한 화제를 뿌렸던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최근 세계를 놀라게 한 실언(失言)으로 또다시 국제적인 구설수에 올랐다.
옐친은 지난 27일 파리에서 열린 NATO―러시아 기본협정 조인식이 끝난 후 NATO 16개회원국 정상들이 둘러앉은 가운데 갑자기 발언권을 신청했다. 그는 다짜고짜 『앞으로 NATO 회원국들을 겨냥한 핵탄두를 해체하겠다』고 선언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옐친의 폭탄선언에 NATO정상들은 귀를 의심하면서도 우렁찬 박수갈채를 보냈다. 언론들은 「러시아 핵탄두 해체」라는 긴급뉴스를 전세계에 타전했다.
옐친의 발언 직후 국제사회가 진의를 파악하는가 하면 러시아내에서는 대혼란이 빚어졌다.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외무장관은 『탄두 제거가 아니라 NATO 국가들을 조준하지 않겠다는 「불조준(不照準)」의 의미』라고 서둘러 정정했다. 국방부도 해명에 나섰다. 『해체가 아니라 미사일의 방향을 돌렸다』고.
러시아 언론도 들고 일어났다. 옐친이 러시아의 일방적인 무장해제를 뜻하는 「탄두 제거」와 상징적인 제스처에 불과한 「불조준」을 혼동한 것은 『군 통수권자로서의 자질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모스크바타임스지는 군개혁에 미온적이라는 이유로 국방장차관과 참모총차장의 옷을 벗긴 옐친에 대해 『옐친대통령이 개혁대상』이라고 개탄했다.
이 해프닝 다음날인 28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에 타결된 흑해함대의 모항인 세바스토폴항 영유권 문제협상도 미숙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협상과정에서 상당부분 후퇴한 상황인데도 옐친이 갑자기 영유권을 대폭 양보했기 때문이다.
옐친대통령은 심장병 수술을 받기전에도 술과 관련, 숱한 해프닝을 벌였었다. 지난 94년 아일랜드방문때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깊은 잠에 빠져서」 회담이 취소된 적이 있다. 그때 그는 기내 과음 때문에 만취돼 일어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94년 독일방문 때 역시 술에 취해 환영악단 지휘자의 지휘봉을 뺏아 마구 흔드는 소동을 빚은 적도 있었다.
〈정성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