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김경민/조어도분쟁과 독도

  • 입력 1997년 6월 3일 20시 19분


중국은 21세기에 있어 무력충돌은 해양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해 왔다. 이러한 예측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 중 일간의 조어도(釣魚島:일본명 센카쿠열도) 분쟁이다. 최근 대만과 홍콩이 일본의 조어도 점령에 대한 항의선단을 파견하자 일본은 실력저지로 맞서 일촉즉발의 무력충돌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동아시아에 있어 해양영토 분쟁은 조어도뿐만이 아니다. 일본과 러시아간에는 홋카이도 북방 4개 도서분쟁이 상존하고 한 일간에는 독도분쟁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또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 등 국가들은 남사제도를 둘러싼 영유권 다툼이 치열하다. ▼ 치열해진 해양영토 싸움 ▼ 1982년 유엔해양법조약이 채택되고 난 이후 각국은 2백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공포하게 되면서 해양자원을 둘러싼 바다차지하기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독도는 두말할 것 없이 한국의 영토이지만 동아시아의 해양영토 분쟁 중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곳은 중국이 영유권 주장을 하는 남사제도와 조어도 주변해역이다. 이 해역은 유엔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ECAFE)가 정밀조사를 실시한 결과 엄청난 양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석유수출국에서 석유수입국으로 변모한 중국은 이 해역의 제해권을 차지하기 위해 원해항해능력을 갖춘 해군력 강화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왔다. 중국이 1988년에 남사제도에 위치한 몇 개의 암초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남사제도 전체의 지배권을 노리는 과정을 살펴보면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을 목도할 수 있는데 이는 중국의 해군력 발전과정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1960년대 후반 남사제도 해저에 다량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해군력이 미약했던 중국으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래서 해군력을 증강하며 중국 최남단 해남도와 남사제도의 중간에 위치한 서사제도를 베트남으로부터 탈취했다. 그때가 1974년 1월이었다. 그 후 무려 14년이 지나서야 남사제도에 무력진출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해군력 강화에 그만큼 시간과 예산이 소요된다는 증거다. 중국의 이러한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일본이 아니다. 왜냐하면 남사제도 해역은 수출입물동량의 99.8%를 해상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의 해상수송로가 지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해상수송로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중국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펴 왔다는 증거는 해양관측위성 「모모b」를 통하여 중국이 서사제도에 건설한 2천6백m의 활주로와 항만시설구축 과정을 수년간에 걸쳐 탐지하여 밝혀냈다는 사실이다. 중국이 건설한 이 시설들은 군용기의 이착륙이 가능하고 구축함 잠수함 그리고 4천t급의 유조선 입항이 가능하다. 일본은 중국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하여 첨단장비로 무장된 해군력 강화를 차근차근 진행해 왔다. 미국과 일본만이 소유한 세계 최고의 전함 이지스함을 주력호위함대군의 기함(旗艦)으로 배치하고 평균함령이 7년반밖에 되지 않는 최신예 해군력을 유지하고 있다. ▼ 해군력 강화 나설때 ▼ 이에 비해 한국의 해군력은 연안경비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반도 주변국가인 러시아와 일본은 막강한 해군력을 유지하고 있고 중국은 이미 해양강국에 돌입하고 있다. 수출입물동량의 99.7%를 바다를 통해 들여오고 내보내는 한국으로서도 바다를 지키기 위한 해군력 정비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일본이 독도주변 해역을 해상봉쇄라도 하게 되면 이에 대처할 해군력이 있는지를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 할 때다. 김경민 <한양대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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