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에서 나비가 날갯짓하면 뉴욕 월가에 폭풍이 분다」.
과장이 섞이긴 했으나 최근 상호 악영향을 미치는 세계금융사태를 적절히 묘사한 표현이다. 태국에서 시작된 환율위기가 홍콩달러에 대한 투기로 번져 홍콩증시 폭락을 낳더니 급기야 전세계 증시가 동반폭락하는 블랙먼데이(10월27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소규모 경제에 충격이 있을 때 주변국들이 이를 완충 흡수하는 것이 기존의 상식이었다면 이번에는 일파만파로 확대재생산되는 길을 밟은 것. 경제가 탄탄하다는 홍콩 싱가포르는 물론 「공룡경제」 미국까지 휘청거렸고 이 충격은 독일 프랑스 러시아 브라질 등으로 파급됐다.
전문가들은 다음의 메커니즘으로 이번의 「낯선 현상」을 설명한다.
▼세계금융시장의 동조화(同調化)〓요즘 자본이 국경을 넘나들 때 드는 비용은 거의 없어졌다. 각국 금융시장의 개방과 선물(先物) 옵션 스와프 등 파생금융상품의 발달에 따른 현상이다.
세계 금융시장의 주력으로 등장한 대규모 헤지펀드가 전세계를 투자 대상으로 삼고 있어 지역적인 충격도 여과없이 다른 나라로 전파된다. 자본거래가 실물거래를 보완하던 수준에 그치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 즉 유동성이 그만큼 커진 것이다.
충격전파가 신속한 만큼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 회복하는 속도도 엄청나게 빨라졌다. 뉴욕의 다우존스지수는 블랙먼데이 이후 1주일만에 폭락전 지수에 거의 근접했다.
지난 29년 대폭락때 25년이 걸렸고, 87년 폭락때 15개월 걸린 것에 비하면 「괴력」에 가까운 회복능력인 셈.
세계증시의 동반폭락은 또 아시아시장의 비중증대를 입증한다. 세계의 거대자본이 성장하는 아시아시장에 집중됐고 이곳에 대한 무역의존도나 현지거점화도 늘어났다. 아시아가 더이상 세계경제의 「변방」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고속성장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의 정부정책이나 외환 및 금융시스템은 비효율적이었고 중국의 저임(低賃)공세로 성장률이 둔화되는 등 기초경제여건도 취약해 세계금융위기의 방아쇠를 당기게 됐다.
▼각국의 사정〓비록 세계금융시장이 동조화하고 아시아시장의 비중이 커졌다고 해도 각국이 받는 충격은 개별 경제여건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은 블랙먼데이 직전 다우지수가 작년말보다 20%나 올라있는 등 주가나 너무 올라 「생산성에 비해 주가가 고평가 됐다」는 견해가 많았다.또 미국의 총수출중 동아시아국가의 비중이 32%에 이르는 만큼 위기감도 컸다. 존 립스키 체이스맨해튼은행 수석연구원은 미국 금융서비스위원회에 출석, 『동남아위기 영향으로 98, 99년의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이 0.5%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은 수출호조에도 불구하고 내수시장이 워낙 좋지않은데다 산요(三洋)증권 도산 등 극심한 금융시장 불안까지 겪고 있어 블랙먼데이 이전부터 주가는 하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하락이 추락으로 바뀐 것 뿐이다.
미국호황에 따른 수출호조 덕분에 동반호황을 누려온 유럽이나 남미는 미국경제의 직접적 영향을 받은 경우.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각국은 10%내외의 주가하락을 기록하고 있지만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조만간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허승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