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신속하고 사무적으로」.
영국의 정권인수인계는 이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영국의 총리직은 선거가 끝난뒤 24시간내에 이양된다. 쓸데없는 시간낭비로 국가권력이 공백상태로 놓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5월1일 총선으로 보수당과 노동당의 18년만의 정권교체가 이뤄졌을 때도 이러한 원칙은 변함없이 지켜졌다.
선거에서 진 존 메이저 전총리는 이날밤 패배를 시인하는 연설을 마치자마자 총리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로 달려가 이삿짐을 쌌다. 다음날 토니 블레어 신임총리에게 관저를 비워줘야 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2일 얼굴 한번 맞대지 않고 영국 최고권력의 자리를 주고 받았다. 이날 오전 전임총리 메이저가 신임총리 블레어에게 축하전화를 걸었고 블레어는 『전임자의 용기를 높이 평가한다』는 짤막하고 의례적인 답사만 발표했을 뿐이다.
전임총리는 선거 다음날 오전 여왕을 방문해 사임서를 제출하고 신임총리는 오후에 버킹엄궁을 찾아 여왕 손에 입을 맞추는 것이 총리로 서임받는 절차. 전임 총리가 버킹엄궁까지 타고갔던 총리 전용차를 신임총리가 타고 나오면 모든 인수인계식이 끝나는 것이다.
신임총리는 이어 총리 관저를 둘러보고 신임 내각명단을 발표한다. 이도 선거전에 발표한 그림자내각(섀도 캐비닛)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선거철이 아니더라도 야당은 여당의 내각에 해당하는 그림자내각을 구성해 담당부처로부터 필요한 자료와 정보를 받아 볼 수 있기 때문에 정권교체에 따르는 행정적 혼란도 크지 않다. 따라서 정권 인수인계를 위한 별도의 팀을 구성할 필요도 없다.
영국 왕실근위병의 근엄한 교체식을 떠올렸던 사람들은 실망을 금치 못했지만 90년 같은 보수당의 대처와 메이저의 권력 인수인계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진행됐다.
영국 왕은 해마다 11월경에 한번 의회연설을 하는데 정권교체가 이뤄질 경우 첫번째 의회 개막연설로 이를 대체한다. 올해도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같은 관습을 따랐다.
이어 신임총리가 취임연설을 하고 야당당수로 변한 전임총리는 곧바로 새 정부의 정책에 대한 반박을 펼친다.
〈권재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