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의 사람들/중국흑이족]연호택/4계급 구분 뚜렷

  • 입력 1998년 1월 7일 20시 44분


중국의 소수민족 이족은 한때 오랑캐라는 뜻의 이족(夷族)이라고 불렸다. 그러다가 1957년 마오쩌둥(毛澤東)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주재한 인민대회에서 만민이 평등해야 할 공산주의 국가에서 불리기에는 어감이 좋지 않다 하여 떳떳한 족속이라는 뜻의 이족(彛族)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들 이족의 삶과 문화는 우리 한민족과 닮은꼴이 많다. 호랑이를 섬기며 설날과 단오 추석 명절을 쇤다. 언어학적으로도 비교연구의 가치가 있다. 이족은 중국 서남부 변방지역인 윈난성(雲南省)주위에 흩어져 산다. 아시, 아처, 싸니, 바이이 등 여러 갈래의 부족이 있다. 이중에서도 자신들의 뼈가 검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흑이(黑彛)가 그들이다. 흑이는 중국인이 자랑하는 비경 토림(土林)에서 산다. ‘흙의 숲’이라는 뜻의 토림은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을 방불케 하는 경치가 빼어난 곳으로도 이름이 높다. 장엄한 위용과 기기묘묘한 토림의 비경을 보노라면 자연의 신비함과 위대함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진다. 어떤이는 이 토림의 비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기이한 토림. 기암 중 어떤 것은 계림 이강의 산만같고 또 어떤 것은 백설에 덮인 산 모양을 이루고 있다. 서장 라사에 있는 포탈라궁을 닮은 형상이 있는가 하면 희랍의 파르테논 신전을 방불케 하는 우아한 자연의 걸작품이 있다. 귀부신궁의 인물상은 참으로 기묘하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든 천마상, 무용을 떨치는 용사상, 비늘 떨치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용의 비천상 등. 토림은 글자 그대로 대자연의 걸작품이요 신선의 정원이다.’ 토림은 윈난성의 성도인 쿤밍(昆明)에서 2백여㎞ 떨어진 곳에 있다. 첩첩산중 자갈길을 때론 걷고 때론 자동차를 타고 하염없이 가야 한다. 이족들의 사회는 별세계다. 이족은 부족이 여러 갈래이고 지역에 따라 자칭 타칭의 명칭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계급 혹은 사회적 신분에 따라 눠허, 취눠, 아쟈, 샤시 등의 네 계층으로 구분된다. 통치계급에 속하는 눠허는 이족말로 ‘주체’라는 뜻. 바로 한자로 표기하면 흑이족(黑彛族)이다. 이들은 스스로 혈통이 순결하고 고귀하다고 여기며 귀족신분과 통치적 특권을 세습적으로 향유한다. 때문에 오래전부터 ‘일반백성’이라는 뜻의 백이(白彛)를 통치하고 머슴인 아쟈와 노예에 해당하는 샤시를 소유해 왔다. 즉 흑이는 기타 다른 계급에 있는 사람들을 일정한 관할내에 예속시켜 두고 마음대로 부리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아쟈와 샤시는 선물로 남에게 주거나 물건같이 양도, 혹은 배상도 한다. 심지어는 도박판에서 돈 대신 걸기도 한다. 흑이는 노동을 극히 천시한다. 설령 흑이들이 가난하게 산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특권은 변하지 않는다. 마치 조선시대 찢어지게 가난한 남산골 양반들 같이. 그러나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여기도 예외일 리 없다. 농촌과 산간오지에 사는 흑이들 중에서는 아래 하인들을 시키는 대신 직접 스스로 생존을 위해 열심히 땀 흘리며 일을 하는 경우가 갈수록 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지배계급으로서의 자존심까지 버리는 것은 아니다. 검은 머릿수건을 두르고 담뱃대를 입에 문 채 귀틀집 앞에 앉아 어쩌다 오가는 행인을 바라보는 노파나, 역시 검은천으로 만든 관처럼 생긴 사각모자를 쓰고 어깨에는 검은색 망토를 걸쳐 입고 수십리 먼길을 걸어 시장에 다녀오는 아낙들조차도 당당하고 기품이 있다. 이들은 행색은 남루해도 얼굴에는 사뭇 지체높은 여인의 귀티가 흐르고 있다.―끝― 연호택(관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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