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에 불어닥친 ‘제2의 금융위기’를 계기로 국제통화기금(IMF) 처방의 실효성에 대한 논쟁이 불붙었다. 지나치게 가혹한 처방이란 일부 주장에도 불구하고 국가부도사태를 앞두고 급전(急錢)이 필요한 상황에서 IMF에 대한 문제제기는 금기였다. 그러나 8일 조지프 스티글리츠 세계은행 부총재의 월스트리트저널지 기고문으로 논쟁이 다시 재연되고 있다.
다만 IMF의 장기처방인 △투명성 제고 △정부의 통제를 배제한 시장경제원리 적용 △폭넓은 개방정책 추진에는 대부분의 당사자가 동의하고 있다.
[찬성론]
▼긴축예산은 필요악이다〓IMF는 흑자예산마련과 고금리를 유지하는 초긴축을 우선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흑자예산으로 금융구조조정 기반을 마련하고 고금리를 통해 외국자본의 급격한 유출을 막아야 외환위기의 고비를 넘길 수 있다는 것. 또 높은 금리는 대출금리보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해온 한계기업을 도태시킴으로써 경쟁력없는 기업을 경제흐름에서 제거해 산업구조를 개선하는 기능까지 한다는 설명이다. 결국 외환위기속에 긴축정책을 추진하면 기업이 겪게 될 어려움은 충분히 예상되나 단기적으로 고비를 넘기기 위해선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미국도 이런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 로버트 루빈 국무부 대변인은 8일 또다시 인도네시아가 신인도를 회복하려면 IMF와 합의한 조건을 충실히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으며 백악관도 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세계은행의 마크 브라운 대외관계 부총재도 “세계은행과 IMF는 한몸과 같으며 IMF의 조치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회의론]
▼IMF처방은 현실을 무시했다〓스티글리츠 부총재는 기고문에서 “높은 이자율, 긴축재정, 높은 세금은 고통받는 환자를 더욱 아프게 할 뿐”이라고 IMF 처방의 비현실성을 지적했다. IMF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아시아 위기의 본질이 민간부문(은행과 기업)의 무리한 차입경영과 취약한 금융구조에 따른 국제적 신뢰도 상실이란 ‘미시적 질환’임에도 금리와 재정정책이란 ‘거시적 치료약’을 처방했다는 것이다. 재정적자와 높은 인플레를 겪은 멕시코위기에 성공적으로 대응한 경험을 갖고 있는 IMF가 상처가 다른데도 불구하고 똑같은 치료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뉴욕타임스지도 7일 “94년 멕시코위기때 IMF는 95년 멕시코경제성장률을 1.5%로 제시하고 경제운용을 관리했지만 실제로는 마이너스 6.1% 성장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긴축일변도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고금리 유지가 신뢰를 상실한 외국자본의 유출을 막는다는 정책의 효과가 의심되는 가운데 과도한 금융비용 부담으로 흑자도산에 이은 대량실업을 불러올 가능성도 경제학자들이 지적하는 점이다.
▼동남아국가의 입장〓인도네시아 수하르토 대통령은 6일 1% 흑자예산 편성과 2% 성장을 요구한 IMF의 권고안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경제운용방안을 발표했다. 즉 예산을 24% 증액하고 성장은 4%로 잡겠다는 것이다. 태국 정부도 IMF와 재협상할 뜻이 있음을 천명한 상태다.
이들은 경기진작과 수출증대만이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IMF에 순응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환율상승으로 유리해진 교역조건도 국내 금융 및 산업기반 붕괴로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해 초긴축경제운용은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승련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