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尼 수하르토 독재, 「금가는 소리」 들린다

  • 입력 1998년 1월 13일 08시 11분


수하르토 인도네시아대통령의 32년에 걸친 철권통치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대외채무 지불유예(모라토리엄) 선언 직전에 몰린 경제위기가 한 세대에 걸친 군부독재의 종식과 민주화 진전의 가능성을 높인 것. 그리고 이 과정에서 원하든 원치 않든 국제통화기금(IMF)이 크게 일조할 전망이다. 지난주 루피아화의 폭락으로 전국에 사재기 열풍이 불고 군부 쿠데타설과 수하르토 망명설까지 유포됐던 최악의 상황은 IMF가 지원약속을 한 뒤 다소 나아졌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금융위기는 수하르토대통령의 하야요구로 비화하기 시작하는 등 이미 정정(政情)불안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때문에 “수하르토정권이 당장의 붕괴는 면했지만 인도네시아에 대한 IMF의 금융 및 재정개혁 프로그램은 결국 ‘트로이의 목마’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실 인도네시아는 ‘수하르토대통령 일가의 족벌회사’나 다름 없었다. 대통령의 3남3녀와 사위 며느리 이복형제 등 20여명의 친인척들은 통신 자동차 석유 금융 부동산 등 인도네시아 산업의 ‘노른자위’를 골라 삼켰다. 수하르토의 큰딸 시티 하르디얀티(49)가 남편과 운영하는 ‘시트라 람토로궁’은 9개 업종에 60개 기업을 거느린 ‘공룡재벌’이다. 맏아들 시지트(46)와 둘째딸 헤디야티(39), 셋째딸 후타미(34)는 유력 재벌기업에 주주로 참여하고 있으며 금융 통신 유통 간척사업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 차남 밤방(45)은 인도네시아 10대 재벌안에 드는 ‘비만타라 시트라’의 소유주. 인도네시아 최대 위성통신회사인 PT새틀린 주식의 60%를 갖고 있으며 민영방송 천연가스 호텔 등 ‘짭짤한’ 사업에 손대고 있다. 셋째 아들 후토모(36) 역시 20대 기업에 드는 ‘훔푸스’의 총수다. 기아자동차와 합작으로 설립한 국민차 티모르의 소유권도 갖고 있었으나 지난해 11월 IMF 개혁조치로 국민차 소유권을 빼앗겼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는 ‘도시바’가 사들였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도시바’는 토미 시지트 밤방 등 수하르토 자녀들의 머리글자를 딴 은어. 국제사회는 수하르토대통령 일가의 족벌경영체제가 나라를 결딴냈으며 결국 ‘주식회사 인도네시아’와 2억2천만명의 국민을 부도직전의 벼랑까지 몰고갔다고 보고 있다. 수하르토는 올해 3월의 대통령선거를 의식해 전년대비 32%나 증액했던 올해 예산안을 재검토하고 15건의 대형 국책공사를 연기할 뜻을 밝혔다. 이는 수하르토 일족의 영향력 약화와 직결된다. 또 IMF는 수하르토에 △세수 확대 △국가보조금 삭감 △통화긴축정책 등 국민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인기없는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때문에 IMF의 ‘트로이의 목마’는 3월 대선에서 7선에 도전하는 수하르토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윤성훈·강수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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