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은막에서 빛을 보지 못했던 홍콩느와르의 총아 저우룬파(周潤發)가 다시 등장한다. 회심의 할리우드 데뷔작 ‘리플레이스먼트(대리) 킬러’가 그의 부활무대다.
그의 영화적대부라해도좋을 우위산(吳宇森)감독의 후광을 온몸에 휘감으며 냉정하면서도 여유로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주윤발에게도 이제 조종(弔鐘)이 울리는가’하는 우려를 사그라뜨리며.
92년 ‘등대여명’ 이후 그의 성가가 아래로만 치닫자 류더화(劉德華)와 진청우(金城武)가 홍콩영화의 빈 자리를 화려하게 채워와 저우룬파는 망각의 저편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95년의 출연작 ‘화평본위’는쓸쓸한실패작이었다.그러나 이번 신작으로 재탄생에 성공해 그의 대표작 ‘영웅본색’이나 ‘첩혈쌍웅’에서 보여준,죽은줄 알았던 총잡이의 돌연한 부활을 보는 듯하다.
그간 홍콩을 아성으로 삼아온 그가 할리우드로 건너간데는 개인적인 슬럼프 외에도 홍콩반환에 따라 마약과 음모, 총성과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정통 느와르의 제작여건이 예전만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여기에 그를 범아시아적인 스타로 성장시켰던 우위산이 할리우드 영화자본과 손잡기 위해 미국으로 간 것이 한몫했다.
우위산은 96년작 ‘브로큰 애로우’의 부진으로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지난해 ‘페이스 오프’로 본래 성가를 회복하자 마치 홍콩느와르의 암흑가 총수가 조직재건 후 옛 충복을 불러들이듯이 저우룬파를 이번 작품에 기용했다. 대신 우위산은 총지휘를 맡고 신예 안톤 후쿠아를 감독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신작의 영상에는 ‘느와르의 르누아르’라 일컬어지는 우위산의 입김이 역력하다. 폭풍전야 같은 침묵 끝에 불꽃놀이처럼 터져나오는 총격전은 프랑스 인상파 거장의 화풍을 보는듯 강렬하고도 고풍스런 색감이 배어있다. 푸르침침한 로스앤젤레스의 밤풍경, 불그스름하게 빛이 녹아든 화교거리는 우위산 폭력미학에 젖줄을 대고 있는 색채대비다.
이 풍성한 색깔의 잔치 속에 저우룬파는 정예 암살전문가로 등장한다. 로스앤젤레스 지하조직의 대부 미스터 웨이가 마약밀거래 도중 자기 아들이 숨지자 저우룬파에게 대리복수를 지시한다.
그러나 그는 저격대상인 강력계 형사의 어린 아들을 보는 순간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암흑가에서 ‘거역은 곧 제거’. ‘리플레이스먼트 킬러’의 액션 뇌관은 이 지점에 매설돼있다.
미스터 웨이에 쫓기는 저우룬파와 동행한 여인은 지난해 ‘마이티 아프로디테’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을 받은 미라 소르비노. 전작에서 보여준 코맹맹이 인상 탓에 암흑가의 잔인한 여전사(女戰士)역으로는 다소 어색해보이지만 액션 데뷔작으로는 평균이상이라는 평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애인은 미국 현대 갱스터무비의 본령에 서있는 쿠엔틴 타란티노감독이 아닌가.
영화 도입부의 크레디트 편집은 저우룬파의 재림(再臨)을 예고한다. 화려한 야회(夜會)에 어두운 그림자로 등장하는 그의 뒷모습 위로 제작진과 캐스팅 멤버의 이름이 적막하게 흐르고 어느 순간 그는 저격을 시작한다. 그가, 저우룬파가 돌아온 것이다.
〈권기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