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일(韓日)어업협정 일방 파기는 외교논리가 아니라 철저히 일본 국내 정치상황에서 비롯됐다.
일본정부와 집권 자민당의 강경파와 온건파는 이를 두고 ‘노선투쟁’을 벌였다. 결과는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내각의 인기하락과 7월 참의원선거라는두가지변수가 겹치면서 강경파의‘완승’이었다.
어업협정 파기를 주도한 강경파의 주류는 어민과 수산업계 이익을 대변하는 ‘수산족(水産族)’등 자민당내 우파세력과 농림수산성.
‘수산족 강경파’의 대표는 시마무라 요시노부(島村宜伸)농림수산상과 사토 고코(佐藤孝行) 자민당 국제어업문제특별위원장. 왜곡된 역사인식과 뇌물스캔들로 이미 물의를 빚은 우파정치인들이다.
시마무라 농림수산상은 협상 막바지에 외무성이 한국의 ‘동경 136도 잠정어업수역’안을 수락할 움직임을 보이자 ‘그러면 내가 사임하겠다’고 위협했다.
그가 사임하면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외상도 함께 물러나야 할 분위기여서 내각개편이 불가피해진다. 인기가 바닥까지 떨어진 하시모토총리는 내각개편이 이뤄질 경우 자신의 총리 재선도 어려울 것으로 판단, 결국 시마무라의 손을 들어주었다.
강경론의 승리에는 7월에 있을 참의원 선거도 큰 영향을 미쳤다. 선거구의 60%가 바다를 끼고 있어 정치인들로서는 어민들의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에서 어민은 전체 인구의 2%에 불과하지만 단결력이 강해 강력한 압력단체가 되고 있다.
결국 얽히고 설킨 일본의 정치판이 양국 정부간 협상을 압도하면서 상식을 뛰어넘은 협정파기를 낳은 셈이다.
일본은 파기통보 후 한국의 반응에 주목하고 있다.
외무성은 23일 한국특파원단과의 간담회에서 “이번 결정이 ‘협상의 최후’를 뜻하는 게 아니다”며 “특히 한국의 금융위기를 이용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강조했다.
〈도쿄〓윤상삼·권순활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