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
스페인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가 죽기 한해전 완성한 데생의 제목. 그림속 낙타등처럼 굽은 백발 노인은 지팡이 두개로도 몸을 지탱하기가 힘겹다. 당시 망명지인 프랑스 보르도에 살던 81세의 고야 자신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세월의 무게에 짓눌리면서도 식지 않는 창작열을 보여준다.
혁명과 반동이 시계추처럼 교차했던 유럽의 근대사만큼 드라마틱한 그의 인생과 예술의 세계가 그림이 아닌 책으로 펼쳐졌다.
4권으로 구성된 ‘고야’(한길사). 일본의 역사연구가이자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작가 홋타 요시에가 고야의 작품들을 매개로 쓴 전기평전이다. 번역은 김석희씨.
고야의 삶에는 빛과 어둠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그는 스페인의 벽촌에서 태어나 수석 궁정화가로 화가가 오를 수 있는 최고의 명성과 지위를 차지했다. ‘오수나 공작의 가족’ ‘검은 옷을 입은 알바공작부인’ ‘카를로스 4세의 가족’ 등은 궁정작가의 제도권 작품.
같은 기간 권력자의 주문을 받지 않은 작품에서는 민중성이 짙게 배어 있는 판화집 ‘변덕’이 탄생했다.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시작된 스페인의 저항과 왕정복고 등 외부의 격랑, ‘마하’ 등 일련의 작품을 둘러싼 외설시비, 거듭된 그의 여성 편력…. 이는 고야에게 친프랑스파 출세주의자 미풍양속 파괴자라는 비난을 제공했다.
그러나 민중의 투쟁을 다룬 판화집 ‘전쟁의 참화’와 주변의 삶을 실감나게 그린 그의 작품들은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 인상주의에 이르는 당대 미술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이책은 유럽의 시대정신과 문화의 큰 흐름 속에서 고야를 꼼꼼하게 엿보고 있다.
〈김갑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