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협상 「용병」 맹활약…美 마크 워커변호사 『돕겠다』

  • 입력 1998년 1월 30일 19시 54분


“마크 워커 변호사는 우리에게 보석같은 존재였다.” 뉴욕 외환협상의 실무단장인 정덕구(鄭德龜)재정경제원 제2차관보는 협상이 타결된 뒤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치밀한 논리와 자료로 채권은행단의 공세를 차단하고 그들을 설득해 한국이 유리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협상단의 말대로 “그를 우리편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이 천운”이었지만 채권은행단쪽에 갔더라면 큰일날 뻔했다는 가슴 서늘한 뒷얘기도 있다. 올해 56세. 미국 뉴욕에 있는 클리어리 법률사무소 소속인 그는 국제금융관계 일만 30년간 맡아왔으며 이 분야에서 세계 1인자로 평가받고 있다. 90년대 중반에는 멕시코정부의 고문변호사로 외환위기를 극복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인물. 워커는 외환위기를 맞은 우리 정부가 이 법률사무소에 용역을 의뢰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하순 워커변호사는 재경원 관계자에게 “채권은행단이 도와달라고 하는데 기왕이면 한국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자청했다. 그때만 해도 한국측은 시큰둥했다. 그러나 그의 능력을 눈여겨본 변양호(邊陽浩)국제금융과장이 “워커가 채권은행단쪽으로 가면 큰일 난다”고 주장해 ‘우리 사람’이 됐다. 차분한 성격에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워커는 브리핑에서부터 토론내용까지 협상 전과정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상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한국측 주장을 설득하는 논리를 개발하는 등 그는 독보적인 존재였다고 정단장은 말한다. 채권은행단의 논리적 허점과 그들이 고용한 변호사들의 성격까지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는 것. 채권은행단이 3차협상부터 자신들이 고용한 셔먼 앤 스털링 법률사무소에서 협상을 하자고 고집한 것도 바로 워커변호사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다가 나온 고육책이었다. 마지막날 체이스 맨해튼 은행대표가 협상안에 불만을 터뜨리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때도 그는 눈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대신 정단장에게 절대 표정을 바꾸지 말라고 충고할 정도였다. 특히 시티은행의 윌리엄 로스 부회장 등 채권은행단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뉴욕 금융계 주요인사들과의 그의 두터운 개인적 친분도 한국측에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재경원 관계자들은 말한다. 〈뉴욕〓이규민특파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