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과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협상이 긍정적으로 마무리됨에 따라 대통령궁 사찰문제를 둘러싸고 빚어진 이라크 사태는 일단 무력 충돌의 위기를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아난총장은 이라크와의 협상결과를 미국과 유엔에 설명하고 이를 추인받아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강경한 입장을 잘알고 있는 아난총장이 “돌파구 마련이 임박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했기 때문에 이라크가 기존 입장에서 후퇴, 미국측의 요구를 상당부분 수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태는 이라크가 국가 주권의 상징인 8개 대통령궁을 무기사찰단에 개방할 수 없다고 선언함으로써 비롯했다.
이라크는 국제사회의 사찰 수용 압력이 거세지자 60일 동안만 사찰을 허용하겠다고 한발 물러섰으나 사찰의 주체인 유엔특별위원회(UNSCOM)의 중립성에 대해서는 계속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미국은 8개 대통령궁에 대한 제한없는 사찰과 UNSCOM이 사찰활동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두 가지 조건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이라크를 공격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춰 제2차 걸프전이 목전에 다다른 상태로까지 사태가 악화했다.
이라크가 강경입장에서 물러선 것은 끝까지 미국측의 요구를 거부할 경우 엄청난 피해가 불가피한 미국의 ‘무자비한’ 공격을 피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또 유엔 사무총장까지 중재에 나섰기 때문에 아무런 양보없이 버티는 것도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라크는 미국과 맞서 대결하면서 중동과 러시아 중국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외교적인 성공도 거두었다고 자평할 수도 있다.
이라크는 또 이번 사태를 유엔의 자국에 대한 경제제재로 인한 참상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로 적절하게 활용했다. 유엔은 최근 이라크의 식량 구입을 위한 석유수출 허용량을 6개월마다 21억달러어치에서 52억달러어치로 대폭 확대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협상결과에 대한 공식발표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협상으로 사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럴듯한 합의가 나오더라도 한쪽 당사자인 미국이 수락하지 않는 한 긴장은 계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진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