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23일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과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 사이에 이루어진 유엔의 이라크 무기사찰 재개 합의에 대해 조심스런 지지 의사를 밝혔다.
그는 “이 합의가 우리가 추구해 왔던 목적, 즉 전면적이고 무조건적인 사찰을 향한 진전이기를 희망한다”며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합의의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걸프지역의 미군은 고도의 임전 태세를 유지한 채 계속 주둔할 것”이라고 밝혀 이라크에 대한 의구심을 감추지 않았다.
한편 미국이 이번 잠정 수용, 이라크공습 카운트다운이 중단되자 백악관의 한 고위관리는 “미국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담 후세인을 혼내주려던 계획은 중단됐지만 어쩌면 더 큰 재난을 피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며 안도했다.
클린턴대통령이 “힘을 동반한 외교가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자평한대로 미국의 무력시위가 이라크를 협상테이블로 끌어낸 것은 사실. 그러나 미국은 초반부터 지나친 강경노선을 택함으로써 평화적 해결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 존재로 낙인찍혀 국제사회에서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라크와의 협상이 결렬돼 미국이 단독으로 이라크 공습을 단행했을 경우 생길 후유증을 생각하면 미국으로서는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민간인 사상자 발생이 불가피해 국제여론을 등질 뿐더러 후세인의 권력을 보다 견고하게 하는 역효과가 우려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는 일관되고 치밀한 외교정책을 수립하지 못한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은 이미 “이라크 사태해결의 주도권을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유엔에 빼앗긴 형국이 됐다”며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두 척의 항공모함과 3백대의 전투기, 30척의 함정, 3만5천명의 병력을 언제까지 걸프지역에 주둔시킬지도 문제다. 병력 파견과 유지를 위해 들어간 비용만 벌써 5억달러라고 워싱턴포스트지는 보도했다.
이번 합의로 긴장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는 것은 성급하다. 경제제재해제 등이 만족스럽게 해결되지 않을 경우 이라크가 다른 이유를 들어 사찰을 제지, 또다른 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이라크는 지난해 11월에도 러시아의 중재를 받아들여 사찰을 허용했다가 이를 어기고 사태를 악화시켰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