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 등 서방선진국들은 최근 “일본이 동남아 외환위기 구제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다”며 잇따라 ‘일본 때리기’에 나섰다.
그러나 일본은 “내수가 살아나지 않아 우리도 고민”이라면서도 “동남아 지원은 할 만큼 하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에 점령당한 구원(舊怨)을 갖고 있으면서도 일본에 종속적인 경제구조를 갖고 있는 동남아가 일본에 치고 있는 SOS는 어떻게 될 것인가.
▼동남아는 일본의 뒷마당〓동남아국가연합(ASEAN) 9개 회원국에 대한 최대 수출국은 일본으로 96년의 경우 역내 수입의 21.8%를 차지했다. 다음은 미국(14.6%) 한국(5.4%) 순.
일본이 동남아에서 수입하는 제품은 석유 목재 등 일부 원료를 뺀다면 현지에 진출한 일본기업들이 일본에 수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동남아 지역으로부터의 이같은 역수입은 91년 1조2천억엔에서 95년 3조엔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85년 플라자협정으로 엔화가치가 크게 오르면서 일본의 수출경쟁력이 약화되자 일본기업들이 동남아로의 공장이전을 늘렸기 때문이다.
ASEAN 회원국의 대일(對日)무역수지는 90년대 들어 급격히 악화돼 90년 34억달러 적자에서 95년에는 2백94억달러 적자로 늘었다.
▼“일본이 나서라”〓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 경제포럼과 지난달 런던에서 열린 서방선진7개국(G7) 재무장관 중앙은행총재 연석회의에서 미국과 유럽대표들은 “아시아 경제위기 해결에 일본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집중 공격했다.
이들은 “일본이 아시아에서의 수입을 대폭 늘려 충격흡수를 위한 스펀지역할을 해야 한다”며 “세금인하, 재정지출 증가 등 내수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에 적극 나서라”고 촉구했다.
‘일본 책임론’의 바탕에는 “일본자본의 과다한 동남아 투자가 이 지역에 거품경제를 일으키게 했다”는 논리도 깔려 있다.
▼일본의 항변〓일본은 지난달 20일 발표한 ‘경제안정을 위한 긴급대책’에서 동남아에 3천억엔의 긴급차관을 공여하겠다고 밝히는 등 나름대로 동남아 지원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동남아 금융위기와 때를 같이해 일본경제 자체가 휘청거리고 있는 것이 큰 문제다. 다보스회의에 참가한 일본대표는 “남의 사정을 돌볼 여력이 없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특히 경기침체에 따른 내수부진과 금융불안이 겹치는 바람에 일본경제는 ‘내 코가 석자’인 상태다.
〈구자룡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