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화제]『日작가 미시마 유키오는 동성연애자』

  • 입력 1998년 3월 5일 19시 57분


‘일본혼의 화신’‘광기의 군국주의자’로 불리면서도 여러해 노벨상후보에 오르다 할복자살로 삶을 마감한 일본 우익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는 동성 연애자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동안 미시마가 동성애 취향이었다는 추측은 있었으나 그의 동성애 상대방이 직접 이를 증언하고 나섬으로써 일본사회와 문단에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후쿠시마 지로(福島次朗·68)라는 작가가 7일 발매되는 문학월간지 ‘문학계’ 4월호에 미시마와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다룬 장편 실명소설을 게재해 확인됐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후쿠시마가 대학 신입생이었던 51년 5월. 문학청년이었던 그는 미시마의 소설에 매료돼 그를 찾아갔고 1개월 뒤 첫 관계를 맺었다. 후쿠시마는 “동성애는 한때 중단되기도 했다가 재개돼 미시마가 자살하기 4년 전인 66년까지 이어졌다”고 고백했다.

‘광기의 기재(奇才)’인 미시마는 일본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급’으로 불릴 만큼 문학적으로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어로도 번역된 소설 ‘금각사(金閣寺)’외에 ‘풍요의 바다’ ‘우국(憂國)’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금색(禁色)’은 동성애를 직접 다룬 소설. 그러나 그는 작품으로서보다 할복자살이라는 극적인 최후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

일본의 재무장과 천황제 옹호 등 군국주의의 부활을 주장했던 그는 45세였던 70년 11월 25일 오전 그를 따르는 우익단체 회원과 함께 도쿄(東京)육상자위대 동부사령부(옛 육군사관학교)를 점거하고 자위대의 궐기(쿠데타)를 촉구했다.

군제복 차림에 일장기띠를 머리에 두른 미시마는 연병장에 모인 자위대원 1천여명을 상대로 “일본혼의 자위대가 왜 자신을 부정하는 헌법을 지키나. 나를 따를 사람은 없는가”고 연설하다 야유가 터지자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고 배를 갈랐다. 옆에 있던 그의 동료가 일본도로 그의 목을 쳤다. 그의 자결은 큰 파문과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일본 우익세력에서 그는 일약 ‘정신적 지주’로 부상했다.

당시 시인 김지하(金芝河)씨는 “조선인의 피를 빨아먹고 피어난 난초에 불과한 별 것 아닌 인간”이라며 그를 비판했다.

〈도쿄〓권순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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