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지도자들,세계를 보듬다…국제기구 首長으로 대거등장

  • 입력 1998년 3월 8일 20시 37분


최근 영향력이 막강한 국제기구에 여성 지도자가 줄줄이 등장, 바야흐로 ‘여성 지도자시대’를 노래하고 있다. 국가경영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를 무대로 삼으려는 여성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여성지도자들은 ‘세계여성의 날’인 8일 일제히 국제사회를 향해 여권(女權)존중을 외치는 등 파워를 과시했다.

올해 들어 국제기구 지도자로 취임한 대표적 여성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그로 하를렘 브룬틀란트 사무총장(58)과 유엔의 루이즈 프레셰트 사무부총장(51).

브룬틀란트사무총장은 노르웨이총리를 지낸 대표적 여성 정치인. 41세때인 81년 노르웨이의 최연소이자 최초의 여성총리가 된 그는 96년까지 세차례에 걸쳐 10년간 총리를 역임했다. 그는 유엔 환경개발위원회에 관여하면서 92년 리우데자네이루 지구환경회의의 초석을 놓는 등 WHO를 이끌고 갈 충분한 경력과 능력을 갖춘 인물로 평가된다.

캐나다 국방차관 출신인 프레셰트 유엔사무부총장은 창립 52주년을 맞은 유엔조직의 비효율성을 제거하고 개혁을 추진할 적임자로 평가돼 영입됐다. 사무부총장은 신설된 자리로 사무총장에 이어 유엔의 제2인자다.

이에 앞서 매리 로빈슨 아일랜드대통령(53)은 지난해 6월 ‘세계 인권파수꾼’인 유엔인권고등판무관으로 취임하기 위해 대통령직을 내던져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는 보수적인 국가 아일랜드에서 변호사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여성 및 소수집단의 권익을 위해 싸워온 ‘여걸’. 90년 대통령이 된 뒤에도 내전 중인 아프리카 르완다를 방문하고 보스니아전범재판을 참관하는 등 국제인권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국제적십자사연맹은 지난해 11월 저개발 국가 지원을 공약으로 내세운 아스트리드 누클레비 하비베르그 노르웨이 적십자사총재(60)를 연맹총재로 선출했다. 이 기구가 여성 수장을 맞은 것은 창립 78년만에 처음. 정신과교수 출신인 하비베르그는 노르웨이의 사회복지부차관 가정소비자부장관 보수당부총재 등을 거쳤다.

91년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에 취임한 일본의 오가타 사다코(緖方貞子·61)도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대표적인 여성. 그는 분쟁지역을 누비며 정력적으로 난민구호사업을 펼쳐 ‘전세계 2천7백만 난민의 어머니’로 불린다. 교수 출신으로 일본 최초의 여성 유엔공사를 역임했다.

유엔아동기금(UNICEF) 캐럴 벨라미 사무총장(56)도 여성 최초의 UNICEF사무총장. 그는 미국 평화봉사단총재를 거쳐 95년부터 UNICEF수장으로서 1백30여개국에서 아동복지증진사업을 펴는 7천6백여명의 직원을 지휘하고 있다.

87년부터 유엔인구기금(UNPFA)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파키스탄의 나피스 사디크(68)는 국제기구 고위직에 오른 최초의 이슬람권 여성. 강한 추진력으로 제삼세계 산아제한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이밖에 조디 윌리엄스 국제지뢰금지운동(ICBL) 공동대표(47)는 여성으로는 드물게 군축운동에 뛰어들어 유엔도 하지 못한 국제지뢰금지협약을 성사시킨 공로로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들 중 브룬틀란트 로빈슨 사다코는 96년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의 후임자 물망에 올랐을 정도로 ‘거물’대접을 받고 있다.

〈고진하기자〉

▼여성각료 없으면 유럽은 안돌아간다▼

한 국가에서 여성이 누리는 권익과 지위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의 하나로 흔히 여성 각료수가 이용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번에 17명의 새 내각 진용에 2명의 여성이 기용됐지만 여전히 ‘구색 맞추기’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반면 선진국인 유럽과 미국은 현재 사상 최고의 여성각료 전성기를 맞고 있다.

전통적으로 여성각료 및 의원 비율이 높은 북유럽 3국은 물론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좌파정권 등장을 계기로 여성각료들이 대거 등장했다. 유럽에서는 단순히 여성각료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외무 상공 법무 등 요직에 앉아 ‘실력’을 뽐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토니 블레어 총리가 이끄는 영국 노동당내각에는 각료 22명 중 여성이 약23%인 5명. 여성 각료는 여성계 대표나 전문가가 아니고 집권하기 전 노동당의 예비내각(섀도 캐비닛)에서 소관업무에 대한 충분한 경험을 익힌 정치인 출신이 대부분이다.

전통적으로 여성각료 및 의원의 비율이 낮았던 프랑스는 지난해 6월 리오넬 조스팽총리가 이끄는 사회당 내각이 들어서면서 면모를 일신했다.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장관급 26명 중 현재 8명(30.8%)이 여성. 숫자상으로나 비율로나 여성각료가 프랑스 역사상 가장 많다.

〈파리·런던〓김상영·이진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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