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친대통령은 이날 크렘린에서 체르노미르딘총리와 면담한 뒤 포고령을 통해 총리와 아나톨리 추바이스 제1부총리, 아나톨리 쿨리코프 부총리 겸 내무장관 등 각료를 모두 사퇴시켰다.
옐친대통령은 이어 TV연설에서 “체르노미르딘총리에게(2000년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위한) 정치적 준비에 전념하도록 했다”고 내각 총사퇴 이유를 설명한 뒤 “그는 철저하고 신뢰할 만한 인물”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는 포고령에서 거명된 세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각료들에게는 “새 내각이 구성될 때까지는 현재의 직무를 수행하라”고 지시했다.
현지 소식통들은 체르노미르딘에게 차기 대선 준비를 하도록 했다는 옐친의 발언이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서 지원하겠다는 뜻인지는 불분명하다고 풀이했다.
체르노미르딘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현재 러시아에 위기가 닥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 조치는 대통령의 자연스러운 권한행사”라면서 자신의 차기 대선출마여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소식통들은 최근 자주 병석에 누웠던 옐친대통령이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는 한편 체르노미르딘총리 등을 정치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내각을 총사퇴시켰다는 엇갈린 해석을 하기도 했다.
옐친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기존 내각은 주요 사안을 해결하는 데 실패했고 러시아 보통사람들에게 시장을 개혁하면 살기가 나아질 것이란 점을 설득하지 못했다”며 경제 실정(失政)을 질타하기도 했다.
크렘린대변인은 “옐친대통령이 에너지장관을 지낸 세르게이 기리엔코를 제1부총리 겸 총리서리로 지명하고 새 내각구성을 일임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옐친대통령이 그를 후임 총리로 확정, 국가두마(하원)에 승인을 요청할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체르노미르딘총리는 5년 이상 재임하면서 옐친대통령의 개혁정책을 수행, 2000년 대통령선거의 강력한 후보로 부각돼 왔다. 한편 옐친대통령의 각료 총사퇴 조치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경제정책은 종전과 다름없이 유지될 것이라고 인테르팍스통신이 보도했다. 그러나 모스크바 증시는 옐친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조치가 알려진 뒤 주가가 6%나 급락했다.
〈윤희상기자·모스크바APDPA이타르타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