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파리∼다카르 자동차경주의 종착지로 잘 알려진 세네갈 수도 다카르의 거리가 지난달부터 부쩍 깨끗해졌다. 도로가 정돈되고 전에 없던 화단이 군데군데 만들어졌다. 물이 귀한 이곳에서 평소에는 언감생심이었던 분수도 등장했다.
지난 1일 이 나라를 찾은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을 맞는 채비였다. 1943년 12월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루스벨트대통령이 세네갈을 몇시간 경유한 이후 54년만의 미국대통령 방문이니 그럴 만도 했다.
미국은 다른 열강들에 비해 아프리카 진출에 소극적이었다. 아프리카에 관한 한 과거 식민종주국인 프랑스 영국 등이 훨씬 앞서 있는데다 아프리카의 비민주적 정치체제와 인종차별 인권탄압 부패 등이 미국의 관심을 떨어뜨렸다. 그러나 최근 10년간 25개국이 민주화를 이루었거나 진행과정에 있을 만큼 아프리카가 달라진데다 자원보고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면서 미국의 관심도 점차 높아졌다.
클린턴대통령은 이번 순방에서 민주화 교역파트너십 인권을 주창했으며 특히 교역확대를 강조했다. 이는 아프리카 전체를 거대한 잠재시장으로 보고 ‘원조가 아닌 교역’이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불모지 아프리카를 집중 공략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6개 방문국 선정도 시장성 민주체제 인권 등의 기준을 다양하게 고려한 듯했다. 민주국가의 뿌리를 내린 세네갈과 보츠와나, 정치 경제면에서 가장 대등하고 모범적인 상호협력이 가능한 남아공, 경제부흥에 전력을 다하는 가나와 우간다, 천연자원이 많고 1억인구의 시장잠재력이 큰 나이지리아를 고른 것이다.
아프리카 각국의 환영열기는 대단했다. 지난달 23일 가나 수도 아크라에서의 환영인파는 철벽을 자랑하는 미국대통령 근접경호망까지 뚫을 정도로 열광적이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의 포용력 있는 대외정책을 강력히 주문한 만델라 남아공대통령의 고언(苦言)이 담긴 연설을 클린턴이 진지한 표정으로 듣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시인이며 아프리카 지성의 상징인 셍고르대통령이 66년9월 취임하면서 세운 민주주의의 토양을 잘 가꿔낸 세계 최장신 국가원수 디우프 세네갈대통령과 클린턴대통령은 국력의 엄청난 차이에도 불구하고 상호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이는 프랑스어권 아프리카국가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인 진출의지를 표명한 것이었다. 클린턴이 다카르 이슬람교사원을 방문한 것이나 마지막 일정으로 과거 노예송출 최종기지인 고레섬을 방문, 노예 매매에 대한 진솔한 사과를 한 것도 세계 노예제도 폐지 1백5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세련된 외교였다.
고레섬에는 노예가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으로 향하는 배에 짐승처럼 실리기 직전 통과했던 ‘돌아올 수 없는 문’이 있다. 클린턴은 힐러리여사와 함께 이 문 앞에 서서 만감에 젖으며 이번 순방의 대미를 장식했다. 특히 인권과 여성권익 증진에 적극적인 힐러리여사는 1년전 딸 첼시와 함께 다녀갔던 이곳을 이번에는 부군과 함께 찾아 남다른 감회를 나타냈다. 클린턴대통령의 블랙아프리카 순방은 아프리카인들에게 ‘기대’와 ‘희망’을 줬다. 그러나 미국이 지향하는 ‘교역 파트너’라는 개념은 아프리카의 현실에서는 아직 멀게만 보였다.
박재선<주세네갈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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