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포트는 누구?]속죄없이 「심판」비켜간 살인광

  • 입력 1998년 4월 16일 20시 29분


‘인간 백정’ ‘20세기 도살자’ ‘죽음의 혁명가’ ‘살인황제’….

별명에서 보듯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압제자중 하나인 폴 포트는 25년 프랑스 보호령의 중심지이던 캄보디아 북부 콤퐁솜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이 살로트 사르인 그는 유년시절 6년간 불교사원에서 생활한 뒤 프놈펜의 기술학교에서 목수일을 배웠다.

49년 정부장학생으로 뽑혀 무선 전자학을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그는 파리에서 급진적인 학생운동에 몸담으면서 마르크스주의에 빠진다.

이때문에 장학금을 취소당하고 53년 프놈펜에 돌아온 그는 지하단체였던 공산당에 입당, 62년 서기장이 됐으며 63년에는 실권자였던 노로돔 시아누크공에게 쫓겨 산속으로 들어가 반정부 무장투쟁을 시작했다.

폴 포트는 이때 크메르족(族)들이 돈을 필요로 하지 않고 자급자족생활을 하면서 불교에 물들지 않은데 크게 감명받았다고 말했으며 이때의 ‘감명’이 후일 무지막지한 사회개조작업으로 나타났다.

75년 4월 17일 ‘어둠으로부터 해방’을 외치며 친미 성향의 론놀정권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잡은 그는 3년8개월간 악명 높은 ‘킬링필드’의 만행을 저질렀다.

79년 캄보디아에 침공한 베트남군에 쫓겨 다시 안롱벵의 정글로 들어간 뒤 20년에 가까운 그의 밀림생활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80년대말 크메르 루주 게릴라운동의 지도자직에서 공식적으로 은퇴했으며 지난해 7월 자신에게 등을 돌린 부하들에게 체포돼 종신 감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당시 병색이 완연한 모습으로 18년만에 서방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던 그는 “나는 투쟁을 수행했을 뿐”이라며 자신의 만행을 정당화하려 했다.

그는 최근의 회견에서 국제재판을 받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끝내 잘못을 속죄하지 않은 채 눈을 감았다.

〈강수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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