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자유’라는 뜻의 이같은 기치를 걸고 시작됐던 프랑스 5월 학생혁명이 3일로 30주년을 맞았다.
전후 학생운동의 기폭제이자 프랑스 사회문화사의 분기점이 됐던 이 혁명 30돌을 맞아 프랑스 언론들이 잇달아 특집을 마련하고 학술세미나와 토론회가 줄을 잇는 등 프랑스는 혁명30돌기념 열기에 휩싸여 있다.
각종 구호와 트로츠키 레닌 마오쩌둥(毛澤東)의 대형 사진들이 어지럽게 내걸린 68년 5월3일 파리 소르본대.
5백명의 무장경찰이 1257년 개교 이래 처음으로 교내로 진입했고 ‘트로츠키파’ 등 농성중이던 5백여명의 좌파 학생들이 현장에서 체포됐다.
그해 4월 부근 낭테르대 학생들의 여학생 기숙사 출입허용 요구가 발단이 된 학생시위는 소르본대로 확산돼 교정은 대학제도의 개혁을 요구하는 성토장이 돼 있었다.
두려움을 느낀 로시총장의 경찰개입 요청이 있었고 68년 5월 학생혁명은 그렇게 막이 올랐다.
학생시위는 곧 기성질서와 권위를 전면 거부하는 젊은이들의 봉기로 변해 프랑스 전국을 뒤흔들었고 경제난에 항의하는 시민들과 노조원 등 연인원 8백만명이 참가한 전국적인 시위와 총파업으로 번졌다.
혁명 뒤의 총선에서 대학생들의 지지를 받았던 반(反)드골 세력은 패배했다.
5월 혁명은 프랑스를 정권이나 국가 중심의 사회로부터 시민중심의 사회로 전환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탈근대 포스트 모더니즘의 프랑스 현대철학은 5월 혁명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학계의 진단이다.
〈김세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