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尼 백화점 불 참사]폭도들 물건훔치다 「숯덩이」로

  • 입력 1998년 5월 15일 19시 40분


'누가 내 아내를…'
'누가 내 아내를…'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전국적인 시위, 군경의 발포로 인한 유혈사태, 경제를 포기하는 사실상의 모라토리엄(대외채무지불유예) 선언, 폭도의 방화로 인한 수백명의 인명피해…. 전쟁터에서도 볼 수 없는 온갖 형태의 불행이 인도네시아를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다.

14일 밤새 자카르타 시내 곳곳에서 백화점 상점 주택 등이 방화로 불길에 휩싸였으나 이미 통제력을 잃어버린 인도네시아정부가 신속한 화재진압에 실패, 피해가 엄청나게 늘었다.

○…14일 족자백화점의 출입문을 부수고 들어간 1백여명의 폭도는 다른 폭도가 지른 불로 백화점이 불타는 것도 모르고 물건을 훔치다 불길에 탈출구가 막히는 바람에 고스란히 타죽거나 질식사.

폭도와 일부 쇼핑객들은 화염이 치솟자 백화점 옥상으로 대피했으나 불길이 건물 전체를 삼키자 창문밖으로 뛰어내리는 등 아비규환 속에서 화마의 희생자가 됐다.

○…불이 난 족자백화점은 자카르타 동부 클렌데르 지역에 있는 구스티누라라이 거리에 있는 5층짜리 건물로 화교소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화재는 약탈이 시작된 14일 오후 1시경부터 발생했으나 자카르타 전시내에서 계속된 폭도의 난동에 따라 밤 늦게야 소방대와 구조대가 도착하는 바람에 사상자가 급증.

자카르타시 소방당국은 족자 백화점 이외에도 시내 곳곳에서 한꺼번에 화재가 발생하는 바람에 우왕좌왕해 대부분의 화재가 건물 등을 완전히 태운 뒤 자연소화됐다.

○…적십자사관계자등구조대원들은 불타버린 족자백화점 안에들어가사방에서새카맣게 타 숨진 폭도의 시체를 발견하고 경악. 시체들은 대부분 서로 앞다퉈 도망치려다 숨진 듯 무더기로 뒤엉켜 있었다.

소방대측의 한 관계자는 “2층까지 수색작업을 벌여 지금까지 89구의 시체를 발견했으며 5층까지 수색을 마칠 경우 사망자는 2백명을 넘을 것”이라고 예상.

사망자들 가운데는 쇼핑객으로 보이는 어린이와 여성들도 끼어 있었으며 각층 매장에는 폭도가 약탈했다 불이 나자 황급히 버린 옷가지 쌀 식용유 등 물건들이 불에 탄 채 어지럽게 널려있어 폭격맞은 건물 잔해처럼 보였다.

○…족자백화점 화재현장에서 숨진 폭도는 인근 칩토 만군쿠수모 국립병원으로 옮겨 안치됐으며 병원측은 “89구의 시체가 이미 도착했으며 소방당국으로부터 1백70구의 시체를 받을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언.

만군쿠수모 병원에 있는 40평 크기의 시체보관소에는 불탄 시체들이 풍기는 냄새로 숨을 못 쉴 지경. 대부분의 시체들은 모두 불에 심하게 타고 오그라들어 키가 80㎝에 불과.

시체의 신원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병원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돌변. 가족의 사망을 확인한 유족들은 보관소 문밖에 쪼그리고 앉아 망연자실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이들 사이에서는 “이 모든 불행은 수하르토대통령 때문”이라는 울부짖음도 터져나왔다.

〈자카르타〓김승련특파원·APAF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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