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하르토대통령은 이날 TV로 생중계된 대국민담화를 통해 “새로운 법을 마련해 총선을 조속히 실시할 것이며 나는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될 준비가 돼있지 않다”고 말해 중도퇴진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그러나 “인도네시아가 새로운 정치시대를 준비할 수 있도록 당분간 대통령직을 수행할 것”이라며 즉각적인 퇴진 요구는 거부했다.
이에 대해 대다수의 학생과 시민은 수하르토의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하며 ‘국민각성일’인 20일 예정된 전국 규모의 시위를 강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슬람계 재야 지도자인 아미에 라이스도 “매우 실망스러운 내용으로 거대한 국민적 저항에 부닥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교민들은 20일 있을 대규모 시위를 틈타 부랑자들이 다시 폭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자 무작정 귀국하기 위해 공항으로 나가는 등 크게 동요하고 있다.
19일 오전부터 한국 대사관 부근 여행사에는 항공권을 구하려는 교민들이 몰렸고 일부 교민은 항공권을 구하지도 못한 채 수카르노 하타 공항에 나가 비행기편을 기다리기도 했다.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인근 주민들과 함께 자경단을 조직하는 교민들도 나타났으며 자카르타주재 한국대사관도 교민들에게 호텔 아파트 등 안전장소로 피할 것을 당부했다.
이에 앞서 인도네시아 대학생들은 18일 밤 처음으로 전국적인 학생조직을 결성했다.
자카르타 시내의 45개 대학대표는 국회의사당에서 수하르토 하야를 위한 국민협의회 특별회의 구성 촉구를 위한 ‘자카르타 학생운동 포럼’을 구성, 20일의 시위를 조직적으로 지휘하기로 했다.
수하르토는 총선이나 사퇴까지의 절차나 기간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으나 각료 중 한 사람은 “퇴진까지는 최소한 18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말해 그렇게 되기까지는 장기간이 소요될 것임을 시사했다.
수하르토는 또 사회지도자와 학자들로 개혁위원회를 즉각 구성해 선거법과 정당법 반독점법 및 반부패법 등을 신속히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18일 수하르토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던 하르모코 인도네시아의회의장은 “의회 의장단과 각 정파는 국가 지도자의 승계는 합헌적인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는데 합의했다”고 밝혀 학생들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이날 한때 달러당 1만7천루피아까지 떨어졌던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는 수하르토대통령의 담화 발표 이후 1만2천루피아로 반등했다.
이에 앞서 세계은행(IBRD)과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이날로 예정된 총 27억2천5백만달러 규모의 대(對)인도네시아 차관심사를 ‘자카르타의 상황이 더 투명해질 때까지’ 무기한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자카르타=김승련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