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를 앞둔 2월 지방에서 피어오른 민주화요구 불길이 ‘국민각성의 날’을 맞은 20일 전국에서 1백50만명이 모이는 대규모 평화시위로 활짝 번져 마침내 노회한 정객 수하르토로부터 항복을 받아냈다. 학생과 시민에 이어 의회와 군부내 추종자가 등을 돌리고 미국 등 외국의 압력도 수하르토의 굴복을 이끌어낸 조력자였다.
민초들이 엮어낸 ‘인도네시아판 피플 파워’는 커다란 대가를 치른 피와 눈물의 열매였다. 2월이후 21일까지 자카르타 메단 등지에서 5백여명이 숨지고 3천여명이 다쳤다. 자카르타 시내의 재산 피해만 2억5천만달러였다.
수하르토의 하야를 이끌어낸 결정적인 힘은 시위를 주도한 학생들과 재야단체의 평화유지 노력, 그리고 그들의 계속된 개혁요구였다.
기독교연합회의 엘리아킴 시토로스 국장은 수하르토의 사임발표 직후 “14일 백화점 방화 참극 이후 단 한명의 사망자없이 사임을 이끌어냈다”며 기뻐했다. 그는 풀뿌리 민의를 한곳에 모아 대규모 시위를 벌이면서도 최대한 폭력사용을 자제해 불필요한 희생을 줄인다는 ‘자바식 시위문화’가 결국 꽃을 피웠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특히 20일 이슬람지도자 아미엔 라이스가 “탱크와 기관총으로 무장한 군부를 이길 방법은 도덕적 우위 속에 평화적인 시위를 벌이는 것”이라며 거리시위 자제를 호소했던데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인도네시아 국민의 분노는 정부보조금 삭감발표(4일)에 따른 물가폭등과 보안군의 발포로 시위학생들이 사망(12일)하면서 터져나왔다. 특히 보안군의 발포는 변변한 조직 하나없이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을 조직화했다.
물론 경제파탄 인권탄압과 대통령 일족의 전횡 등 장기집권의 후유증 속에서 오래전부터 정권붕괴의 싹이 자라고 있기는 했다. 17일 트리삭티대에서 만난 한 학생은 “‘수하르토 일가의 재산을 합하면 인도네시아가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된다’는 방송을 들은 적이 있다”며 대통령일가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을 드러냈다.
의사당 주변을 뒤덮은 인도네시아 국민은 지난 30년간 탄압 속에 민의를 대변할 기구 하나 없던 자신들이 이뤄낸 엄청난 결과가 믿어지지 않는 표정이었다. 한 학생대표는 “우리가 바란 것은 근대화된 조국이지 한 개인의 정치생명은 아니다”며 “새 정부의 개혁작업을 지켜보겠다”고 다짐했다.
〈자카르타〓김승련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