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하르토이후의 印尼]내부갈등 첨예…험난한 앞길

  • 입력 1998년 5월 22일 19시 20분


위기의 인도네시아호(號)가 ‘민주화와 경제개혁’의 항로를 잘 항해할 수 있을까.

그 답은 32년의 철혈독재 동안 얽히고 설킨 내부의 갈등을 얼마나 잘 치유하고 빨리 봉합하느냐와 정치민주화 일정을 어떻게 마련해 실천하느냐에 달려있다는 평이다.

인도네시아는 선원들의 지탄을 받아온 ‘부패한 선장’을 32년만에 끌어내렸다. 그러나 선장의 ‘양아들’같은 존재이던 부선장이 항해를 맡았다. 일부 선원들은 “새 선장을 뽑아 전혀 다른 신선한 항로로 가자”고 아우성인 가운데 가장 막강한 세력(군)은 “선상반란은 용인할 수 없다”며 “우선 다들 가만 있으라”고 눈을 부라리고 있다.

정치세력은 지리멸렬한 상태이며 재야 역시 사분오열돼 있고 사회통합도 최악의 상태로 악화돼 있다.

이같은 갈등을 서둘러 봉합하지 않으면 1998년 5월 2억 인도네시아인들이 거둔 찬란한 승리는 ‘미완의 혁명’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다.

시민혁명의 전위에 섰던 대학생과 일부 시민들은 일단 캠퍼스와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바차루딘 주수프 하비비신임대통령을 신뢰하지 않는 학생들은 그의 퇴진을 주장하고 “백보 양보하더러도 ‘임시 관리자’로서 정치개혁 프로그램과 일정을 마련, 실천하는 역할로 끝나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수하르토 시절 건설 무역 통신 관광업을 아우르는 팀스코그룹의 총수였던 하비비와 그 일가의 행적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많다.

학생들은 “이러한 하비비가 수하르토 처벌, 경제개혁, 정치 민주화를 해내겠느냐”며 “일단 캠퍼스로 돌아가지만 개혁을 위한 투쟁은 계속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비비체제를 합헌(合憲)으로 인정하고 충성을 다짐한 군부에도 분열조짐이 있다. 특히 위란토 국방장관겸 통합군사령관과 수하르토의 사위 프라보특전사령관간의 심각한 갈등은 어떤 불의의 사태를 불러올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이 나라에는 정치 경제개혁을 감당할 만한 민간 정치세력도 준비돼있지 않다. 집권 골카르당이 절대 다수인 5백석의 국회(DPR)는 ‘수하르토의 로봇’이고 헌법에 2개로 못박혀있는 야당은 철저한 ‘관제 야당’이다. 헌법제정권 대통령선출권 등을 가진 1천명 의원의 국민협의회(MPR)는 국정 최고기구임에도 ‘거수기’로 낙인찍혀 있다. 기성 정치세력은 총체적인 탄핵대상이나 마찬가지다.

재야세력도 여러 가닥이어서 단합할 가능성은 낮다. 하비비 인정을 놓고 의견이 분열되는 가운데 독자적 대권도전 선언이 나오는 등 ‘독불장군’이 한둘이 아니다.

이런 와중에 “수하르토와 일가족을 재판해 전 재산을 몰수하자”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어 ‘태풍의 눈’이 될 전망이다.인도네시아판 ‘역사 바로세우기’가 될 이 작업은 간단치 않다. 수하르토 족벌과 권력층이 손대지 않은 산업이 없다시피하다 보니 이는 사회구성체를 해부하는 대작업일 수밖에 없다. 기득권층의 반발이 얼마나 극심할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하비비정부가 선거관리를 위한 과도역할을 맡고 △선거법 정당법 개정 △국회 국민협의회의 재구성 △대통령 재선출 등을 통해 정치안정을 이루면서 국제사회와 협력해 경제개혁을 착실히 이행, 시민혁명을 완성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윤희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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