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에여사는 프라이가 전날 밤 심장발작을 일으켜 치료를 받았었다고 말했다.
프라이는 일요일인 19일 뮌헨의 한 극장에서 마지막 연주회를 가졌다.
지난 40여년간 전세계 주요 무대에서 오페라와 리트(예술가곡)를 함께 불러 온 프라이는 부드럽고 서정적인 음색과 스타일을 중시하는 뛰어난 감각으로 「바리톤의 명인」으로 불렸다.
1929년 7월 11일 베를린에서 출생한 그는 열 살 때부터 베를린 합창단에서 노래했으며 베를린 음악대학에서 수학한 뒤 52년 비스바덴 극장에서 데뷔했다.
그는 60년 리하르트 바그너의 「탄호이저」로 독일 바이에른 주립극장과 뉴욕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에 연속 진출했으며 이후 바이로이트의 바그너 축제에도 출연했다.
프라이는 나중에 지휘자로도 활약, 특히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축제에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지휘해 큰 평판을 얻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세 자녀가 있으며 장례 일정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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