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1차회담은 ‘외교관 맞추방사태’로 양국의 감정이 곤두서있는 상황에서 처음 가진 외무장관 회담이었기 때문에 곧바로 우호협력방안을 논의하기 어려웠던 측면도 없지 않았다.
1차회담의 충격 때문인지 회담전망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지만 “뭔가 수습의 가닥을 잡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외교관 맞추방사태’로 한―러관계 자체가 손상돼서는 어느 쪽도 이로울게 없다는 전제만큼은 확실히 공유하고 있어 회담이 더 이상 악화일로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문제는 ‘외교관 맞추방사태’의 수습기회가 될 줄 알았던 1차회담 분위기가 갑자기 경화(硬化)될 수밖에 없었던 근본원인을 우리 정부가 간과했다는 점이다.
겨우 러시아 외무부와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 해외정보국(SVR)간의 조직갈등에 휘말린 것 아니냐는 ‘단편적 추측’만 내놨을 뿐이다.
즉 SVR가 최근 공식논평을 통해 한―러간 외교분쟁이 종결됐다고 밝히긴 했지만 그것은 러시아와 한국정보기관간의 갈등이 종결됐다는 의미일뿐 정작 러시아 외무부는 외교관 맞추방사건 과정에서 심각한 위상실추를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반작용이 이번 마닐라회담에서 드러났다는 것이다.
특히 주러 한국대사관의 조성우(趙成禹)참사관 추방 및 발렌틴 모이세예프 부국장 구속을 주도한 FSB의 니콜라이 코발료프 국장이 25일 경질되자 러시아 외무부가 ‘반격’에 나섰고 우리가 그 ‘희생양’이 됐다는 풀이다. 외교통상부 고위당국자는 “러시아 외무부는 우리 정보당국이 ‘러시아 외교관들의 금전수수 관행’을 공공연히 거론한 데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러시아측의 분위기로 볼 때 2차회담에서 사태수습의 가닥을 잡을 수 있을 지는 몰라도 한―러관계의 복원여부는 아직 뭐라고 예측하지 못할 만큼 시계가 극히 불투명하다.
이번 사태는 30억달러 경협차관까지 호언해가며 서두른 6공정부 북방외교의 ‘거품’이 걷히면서 일시에 밀려온 외교적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도대체 러시아가 왜 이러는지’를 놓고 표피적(表皮的)논란만 거듭하고 있다. 한―러관계의 위기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마닐라〓김창혁기자〉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