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朴定洙)외교통상부장관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열리는 필리핀 마닐라 현지에서 서울의 선준영(宣晙英)차관으로부터 관계기관 합동회의 상황을 수시로 보고받으며 2차회담 협상대책을 점검하는 등 마지막까지 긴장된 모습이었다.
○…이날 오후 2시 마닐라호텔에서 박장관과 예브게니 프리마코프장관간의 제2차 외무장관 회담이 열리기 직전 현지에 와있는 외교통상부의 실무자들 사이에는 “마지막까지 협상이 계속되겠지만 수습쪽으로 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들이 흘러나왔다.
1차 회담 이후 양국 외무장관 회담에 관해 ‘함구’로 일관하고 있는 박장관도 “외교협상을 어떻게 단 한 번의 회담으로 판단하려 하느냐”면서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말로 ‘수습’을 암시했다.
양측이 막판까지 줄다리기를 계속한 핵심은 역시 당초 사건발단의 원인이었던 양국 정보기관간의 정보활동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통상부의 조일환(曺一煥)구주국장은 1차 회담 결렬 직후 “(외교관 맞추방사건과 관련된 것이긴 하지만)러시아측이 새로 주장하는 것이 있었다”고 발언해 한때 협상쟁점을 둘러싸고 오해가 빚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핵심쟁점은 우리 정부가 맞추방한 주한(駐韓)러시아대사관 올레그 아브람킨참사관의 재입국문제를 포함해 양국 정보기관이 그동안 물밑실랑이를 벌여왔던 문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통상부는 결국 정보기관간의 마찰문제가 확대될 경우 협상이 지나치게 민감해질 우려가 높다고 판단해 “이미 체결돼있는 ‘한―러간 정보협정’을 충실히 지켜나간다”는 해법을 대안으로 제시해 가닥을 잡았다는 후문이다.
○…한편 정보당국은 2차 회담 직전 보도자료를 통해 러시아측의 회담태도가 ‘외교상식’에 어긋난 것임을 지적했다.
정보당국은 또 1차 회담이 결렬된 것은 “러시아측이 과도한 요구조건을 제시하고 나왔기 때문”이라며 문제가 됐던 주러 한국대사관 조성우(趙成禹)참사관의 정보수집활동은 통상적인 활동의 일환이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러시아의 태도는 한마디로 강대국의 횡포”라면서 “우리는 러시아에 더 이상 줄 것도 없고 받을 것도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마닐라〓김창혁기자〉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