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맵 룸’에서 폐쇄회로 TV로 증언장면이 23명의 연방대배심원들에게 생중계되는 가운데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를 비롯한 검사들로부터 수시간동안 신문을 받았다. 그는 이날 증언에서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성관계’를 가졌다고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현직대통령이 자신의 형사적 혐의에 대해 연방대배심에 증언한 것은 미 헌정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앞서 오린 해치 상원법사위원장(공화)은 “클린턴대통령이 이번 증언에서 솔직하게 진실을 밝힌다면 의회가 그를 탄핵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연방대배심 증언과 관련해 불리한 상황에서 교묘하게 위기를 모면하는 클린턴대통령의 말솜씨가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클린턴대통령은 국정전반의 세세한 분야까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어 공직수행능력에 관한한 높은 점수를 받는 편이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지엽적인 질문에 대해서도 막힘없이 정확히 답변, 감탄을 자아내곤 한다.
그러나 사생활에 이르면 그는 갑자기 평범한 중년남성보다 못한 기억력의 소유자로 변한다. 올 1월17일 폴라 존스사건에 대한 증언에서 그는 5시간 동안 2백67번이나 기억력을 되찾는데 실패했다.
존스측 변호인이 쏟아붓는 질문에 그는 한번도 긍정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가 뛰어난 지능의 보유자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는 “모른다”는 뜻의 답변에서 표현을 달리하는 말을 무려 56번이나 했다. 천재적인 말솜씨였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위증을 피하기 위한 ‘회피’작전의 하나. 존스측 변호인이 “르윈스키와 둘만 있었던 적이 있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 “그가 서류를 갖다주곤 했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둘만 있었던 사실이 있다는 것인지 없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마냥 ‘모른다’라고만 하면 태도가 불성실한 인상을 줄 수 있다. 여기서 그의 현란한 말솜씨가 펼쳐진다.
“그걸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억이 전혀 없을 뿐이다.”
“그에 관해 직접적인 지식이 없다.”
“따로 생각나는 게 없다.”
“내가 그렇게 했다면 생각이 날텐데….”
그의 현란한 답변술은 과연 17일 증언에서도 통했을까.
〈워싱턴〓홍은택특파원〉 eunt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