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CERN의 가장 큰 관심사는 단연 2005년을 목표로 추진중인 초대형 강입자충돌가속기(LHC) 프로젝트다. 특히 이 프로젝트에는 고려대 한국검출기연구소 박성근교수를 비롯한 한국의 젊은 과학자들이 처음으로 참여, 더욱 관심을 끈다.
가속기는 양성자를 시계방향과 반대방향으로 빠르게 돌려 서로 충돌시키는 장치. 양성자를 서로 충돌시키면 더 작은 입자로 쪼개진다. 충돌 후 파편의 궤적과 에너지를 연구, 전자현미경으로도 확인할 수 없는 미지의 입자를 찾아내는 게 가속기의 임무다.
기자가 견학한 ‘델피’는 CERN의 네 곳 가속기 컨트롤센터 가운데 하나. CERN이 현재 가동중인 가속기는 둘레만 해도 27㎞나 되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규모. CERN에서 추진중인 가속기 LHC는 현재 운영중인 가속기를 들어내고 그자리에 새로운 설비로 건설된다. 가속기를 교체하는 이유는 에너지를 훨씬 높여 양성자를 더 빠른 속도로 돌리기 위한 것.
신분 확인을 거쳐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컨트롤센터 지하로 내려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는 순간 눈앞엔 4층 높이의 지하 시설물이 펼쳐진다. 지하 1백m 지점. 말 그대로 거대한 ‘지하 요새’였다.
안내를 맡은 홍보담당자 닐 칼더는 “이곳은 가는 튜브를 타고 달려온 양성자들 사이에 서로 충돌이 이뤄지는 장소”라고 설명했다. 빛의 속도로 달려온 양성자들은 이곳에서 매초 수억번씩 서로 충돌을 일으킨다. 수많은 충돌에서 생기는 에너지나 궤적에 대한 데이터는 분석작업을 위해 수천가닥의 전송선을 타고 컨트롤센터로 보내진다.
과연 양성자가 서로 충돌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이번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고려대 박성근교수는 “지금까지 가설로만 존재했던 입자인 ‘힉스’를 찾아내는 게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라고 밝혔다.
일반인들은 상식적으로 모든 물질은 질량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의 기본 모델을 전제로 물질을 쪼개 나가다보면 어느 순간 질량을 갖고 있지 않은 입자가 나온다는 것.
이 때문에 64년 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 힉스는 질량을 부여해주는 역할을 하는 미지의 입자가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그 입자는 그의 이름을 따 ‘힉스’라고 이름붙여졌다. 힉스는 현대 물리학의 기본 모델을 완성하기 위해 반드시 찾아야하는 궁극적인 입자인 셈이다.
박교수는 “‘힉스’는 매우 높은 에너지 상태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일상에서 확인할 수 없다”“거대한 가속기를 이용, 양성자를 빠른 속도로 충돌시켜 태초의 환경을 재현하는 것이 힉스를 찾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가속기는 현대 입자물리학의 핵심장비로 태초의 ‘빅뱅’을 1백50억년만에 재현, 새로운 입자를 발견하는 역할을 한다. 95년 미국 페르미연구소가 보유하고 있는 가속기 ‘테바트론’에서 여섯번째 쿼크인 ‘톱쿼크’가 확인된 것은 유명하다. 과연 CERN의 초대형 가속기가 물리학의 역사를 새로 쓸 것인가. 세계는 지금 CERN의 프로젝트를 주목하고 있다.
〈제네바〓홍석민기자〉sm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