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어업협상 타결안팎]김봉호부의장,오부치와 직접담판

  • 입력 1998년 9월 25일 19시 38분


피를 말리는 막판 협상이었다. 양측은 쟁점인 중간수역의 동쪽한계선 획정과 대화퇴(大和堆)어장문제로 버티기를 계속했다. 타협의 골격은 이미 마련돼 있었다. 19일 제주도에서 한일의원연맹수석부회장인 김봉호(金琫鎬)국회부의장과 사토 고코(佐藤孝行)자민당 국제어업특위위원장은 동쪽한계선을 1백35도 30분으로 한다는데 합의했었다. 이른바 ‘제주도 합의’였다. 그러나 일본측은 이날 밤 이 합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나왔다. 지난 7개월간의 협상타결 노력이 물거품이 될 긴박한 상황이었다.

○…24일 오후 6시로 예정됐던 ‘2+2회담’은 일본측이 ‘제주도 합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버티는 바람에 1시간40분이나 늦게 열렸다. 더욱이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농림수산상이 포토세션 도중에 자리를 떠버려 회담은 제대로 시작되지도 못했다. 난감해진 사토위원장은 김부의장에게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를 만나야겠다”며 일어섰다. 밤 10시반이 되어서야 돌아온 사토위원장은 김부의장에게 총리를 만나러 가자고 했다.

○…김부의장은 한달음에 총리공관으로 달려갔으나 오부치총리의 말은 기대 밖이었다. 그는 “당에서도 반대가 심하다”면서 “대화퇴어장의 절반을 한국에 양보할 수는 없으므로 타결을 좀 미루자”고 제의했다. 김부의장으로서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방일은 취소될 수밖에 없다”고 배수진을 쳤다. 김부의장이 완강하게 버티자 오부치총리는 “그렇다면 내가 지금 김대통령에게 전화를 해보겠다”고까지 했으나 김부의장은 “어업협정은 어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21세기 한일관계의 문제”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오부치총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나카가와농림수산상과 김선길(金善吉)해양수산부장관을 불러들였다. 동쪽한계선과 대화퇴 어장문제를 손댈 수 없으면 중간수역에서의 어업실적문제만이라도 조정하기 위해서였다. 이 사이 옆방에 있던 사토위원장이 자민당의 모리간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동경 1백35도30분이 유일한 대안임을 다시 강조했고 결국 한국어선들의 어업실적을 조정하는 선에서 협상은 타결됐다. 시계는 오전 0시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김창혁기자·도쿄〓권순활특파원〉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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