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좌파의 젊은 신세대 지도자들이 속속 국정책임자로 등장하고 있는 유럽의 변화물결 속에는 환경정당들이 연정 파트너로 등장한다는 유럽만의 독특한 추세가 자리잡고 있다. 독일에서 녹색당이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예정자가 이끄는 사민당(SPD)의 연정 파트너로 부상한 것은 이같은 유럽의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유럽에서는 지난해 프랑스에서 녹색당이 연정에 참여한 것을 비롯해 이탈리아와 핀란드의 환경정당들이 연정파트너로 활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 녹색당의 연정 참여는 독일이 유럽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으로 미뤄 국내는 물론 유럽 전체의 정치 경제 사회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다. 더구나 녹색당의 지도자인 요시카 피셔 하원 원내총무가 외무장관으로 기용될 것으로 보여 녹색당의 정책은 유럽연합(EU)은 물론 전세계적 차원에서도 상당한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68년 5월 프랑스 학생혁명에 사상적 뿌리를 두고 있는 독일 녹색당은 70년대 말 미국의 퍼싱 미사일 배치를 계기로 반핵 반미 환경보호 운동에 참여했던 운동권 출신들이 87년 창립한 정당. 이때문에 녹색당의 공약에는 △핵발전 중단 △태양열 에너지산업 집중 투자 △고속도로 속도제한 △항공기 연료에 대한 중과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해체 등 급진적이고 이상론에 가까운 것들이 많다.
그러나 녹색당은 이번 총선에서 47석(득표율 6.7%)을 얻어 당당한 연정 파트너로 부상했다. 83년 5.8% 득표로 처음 원내진출에 성공한 녹색당은 94년에는 7.3%를 얻었다.
사민당은 이미 에너지 사용시 세금을 부과해 사회보장비용으로 돌리도록 한 환경세 개혁안 마련 등 녹색당의 주장을 일부 수용하기로 했다. 사민당은 핵발전소 가동중단에도 동의했으나 경제계의 반발을 고려해 중단 시기는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NATO 해체 등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려 연정 협상의 주요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녹색당의 공약이 독일에서 찬반 양론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외부의 반응도 엇갈린다. 월리엄 코언 미국 국방장관은 녹색당의 NATO 해체 주장을 의식해 “슈뢰더 총리예정자는 헬무트 콜총리의 외교정책을 계승하겠다고 말했다”며 “독일은 현재 NATO의 주요한 동맹국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는 녹색당의 반(反)자동차정책으로 인해 독일에 대한 추가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
그러나 정부에 참여한 유럽의 환경정당은 대부분 국민의 지지를 얻는 정책을 펼쳐 기반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6월 환경장관이 된 프랑스 녹색당 지도자 도미니크 브와네는 고속증식로의 가동을 중단시키는 한편 라인강과 론강을 잇는 초대형 운하건설 및 대서양 연안 카르네에 건설 예정이던 원전 계획을 철회시켰다. 지난해 라 로셸과 파리 근교 생제르맹 앙레에서 벌인 ‘차없는 날’ 행사를 올해는 파리를 비롯한 전국 38개 도시에서 확대 실시해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파리〓김세원특파원〉claire@donga.com